지난 12일 두만강 근처에 있는 중국 훈춘시 팡촨. 북한·중국·러시아의 3국 접경지인 이곳에는 중국인 관광객의 행렬이 몰렸다. 중국 훈춘 시내에서 팡촨과 북한 국경으로 이어진 도로에는 차량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 조선족 사업가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이 급물살을 타면서 교통량이 크게 늘었다”며 “내달 북한 나진항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정식 개통되면 경제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훈춘 시내 상가. 상점 안 곳곳에서 짐꾸러미를 든 러시아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상가의 간판도 대부분 한국어 중국어 러시아어가 병기돼 있다. 이곳이 중국인지 러시아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훈춘시 상무국 관계자는 “금요일부터 주말을 이용해 공산품을 사거나 중개무역을 하려는 러시아인들”이라며 “일부 러시아인은 훈춘 부동산까지 사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중 수교 이후 20년 동안 연안지역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던 동북지역이 최근 경제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개방과 러시아와의 교류 확대, 그리고 일본과 한국 기업의 투자 덕분이다. 물류 문제가 해소돼 풍부한 지하자원 개발이 본격화할 경우 앞으로 20년 동안 중국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나타낼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낡은 공업지대에서 꿈꾸는 부활

지린, 랴오닝, 헤이룽장 3성을 지칭하는 동북지역은 개혁·개방 이전만 해도 중국에서 가장 발달된 공업지대였다. 중국 전체 석유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헤이룽장의 다칭유전을 비롯한 풍부한 지하자원과 일제시대 때부터 뿌리를 내린 기계·석유화학 시설이 집중돼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발전의 중심이 선전 등 남방으로 옮겨가면서 동북지역의 경제발전은 뒤처졌다. 국영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2000년을 전후로 시행된 대규모 ‘시아강(下崗·인력 구조조정)’으로 동북지역은 활기를 잃었다. 당시 쏟아져 나온 수천만명의 실직자 중 대부분이 동북지역에서 나온 것으로 추산된다.

한홍석 LG경제연구원 베이징소장은 “공업 발달이 다른 지역보다 일찍 시작되면서 동북지역 기업들은 벌써 퇴직자에 대한 연금 지급 부담을 안고 있는 등 여러 면에서 경쟁력을 잃었다”며 “한때 중국 최고의 공업기지였던 동북이 지금은 남방에 지하자원을 보내고 공산품을 받아오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한·중 수교 초기에 200만 조선족의 집단 거주지인 이곳에 투자하려는 기업도 많았지만 곧 상하이 등 연안지역으로 옮겨갔다. 마땅한 물류 인프라가 없어 수출 가공기지로는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성장엔진, 물류

동북지역은 개혁·개방 이후 2000년 이전까지 중국 평균 성장률을 밑돌았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동북 3성의 평균 성장률은 중국 평균을 압도하고 있다. 중국 경제가 7.8% 성장에 그친 올 상반기에 동북 3성의 지역총생산(GRDP) 증가율은 10.1%에 달했다.

이런 성장의 배후에는 교통 인프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있었다. 2006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랴오닝연해경제개발벨트’가 대표적이다. 다롄을 중심으로 단둥, 후루다우 등 6개 해안도시를 잇는 이 개발계획의 핵심은 항만과 주변 인프라를 개선, 톈진과 산둥반도를 잇는 초광역 경제권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다롄과 옌타이를 잇는 해저터널 건설 등 굵직굵직한 기반시설 사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올해 해당 지역의 외자 유치가 전년 대비 21.7% 늘었다. 다롄항의 물동량 증가율도 전국 최고를 나타내는 등 개발에 따른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지린성에서는 2009년부터 창지투(창춘·지린·투먼)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랴오닝벨트의 핵심이 교통인프라 정비였듯, 창지투 개발 역시 창춘에서 투먼을 잇는 육상 교통로 개척이 우선 목표다. 이를 위해 지린과 훈춘을 잇는 355㎞ 길이의 철도 공사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408억위안의 공사비가 투입된 공사가 끝나면 창춘을 비롯한 동북 일대는 물론 베이징과 네이멍구 등에서 오는 물자도 훈춘을 거쳐 북한과 러시아로 갈 수 있게 된다. 훈춘에는 90㎢ 규모의 ‘두만강국제협력시범구’를 조성해 해외 자본도 적극 유치할 계획이다.

◆주변국 협력도 순항

각종 개발계획이 쏟아지면서 요즘 훈춘과 투먼 일대에는 개발 관련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내달 훈춘에 온다” “시진핑 국가 부주석의 사촌 여동생이 27억위안을 훈춘에 투자했다” 등 중앙정부에서 훈춘 발전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훈춘시 관계자는 “모두 어느 정도 근거가 있지만 훈춘은 중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불확실성이 크다”며 “러시아 북한 간의 관계에 따라 개발 일정도 큰 변화를 겪는다”고 말했다.

훈춘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까지는 러시아를 통과해 50㎞를 가야 한다. 아무리 훈춘까지 교통 인프라를 잘 만들더라도 인접 국가와의 협력이 되지 않으면 계획은 꼬이게 된다. 러시아 고속도로에서는 40피트 이하의 컨테이너만 운반이 가능해 중국발 화물의 운송이 제한되는 점이 단적인 예다.

다행히 북한과 러시아도 훈춘 인접 지역에 대한 개발 속도를 높이고 있다. 다음달 8, 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큰 계기다. 러시아는 지난 5월 극동개발부를 신설하고 해당 지역 물류 인프라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최근 방중 이틀째 창춘을 찾은 것에서 알 수 있듯 북한도 창지투 개발과 연계된 나진·선봉 개발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주센핑 지린대 동북아시아 연구소장은 “지정학적 이점에 풍부한 지하자원이 결합하면서 동북지역은 최소한 앞으로 10년간 중국에서 가장 높은 발전 속도를 구가할 것”이라며 “특히 교통 인프라 완비와 맞물려 자동차 및 석유화학 관련 기업들에 좋은 투자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태완 특파원(베이징·충칭) 이정호 기자(상하이·우한) 노경목 기자(칭다오·창춘·훈춘)

한국경제·LG경제연구원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