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정부가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국영기업을 민간에 넘기는 민영화 규모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 재정위기와 각국의 정치불안으로 인해 민영화 매물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줄어든 영향이다. 유럽의 경우 정부가 은행 구제금융에 많은 지원을 하다보니 재정 부담을 덜려는 민영화 정책도 별무효과인 실정이다.

◆각국 민영화 규모 급감

파이낸셜타임스(FT)는 KPMG 보고서를 인용, 지난해 세계 각국에서 민영화된 기업의 규모는 944억달러(매각대금 기준)라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전년(2136억달러)에 비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FT는 “재정 압박을 받는 각국 정부가 공항, 전력 회사, 수자원 회사까지 시장에 내놨지만 정치 불안과 시장 혼란으로 인해 투자자들이 선뜻 구매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탈리아 그리스 폴란드 이집트 등 재정위기나 정치 혼란을 겪고 있는 나라에서 지난해 취소되거나 연기된 민영화 규모는 346억달러에 달했다. 지난해 최대 규모 매물(매각 희망금액 75억유로)로 나왔던 스페인 국영 복권업체 LAE의 민영화도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FT는 전했다. 베르나도 보토로티 토리노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매물을 내놓기보다는 기다리는 게 더 좋은 전략”이라고 말했다.

노조 등과 결탁한 각국 정치세력이 민영화의 효율성에 의문을 표시하며 반대하고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데이비드 홀 그리니치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일부 민영화는 분명히 이데올로기적 이유 때문에 이뤄진다”며 “민영화가 반드시 더 높은 효율이나 생산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한국도 민영화 작업은 순탄치 못하다. 2010년부터 시작된 자산 400조원 규모 우리금융지주의 매각 작업이 올해도 무산됐다. 인수 후보자들이 시장 상황을 이유로 입찰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가장 규모가 컸던 민영화 성사건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2008년 구제금융을 통해 사들였던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 지분 15%를 매각한 것이다. 이 매각으로 Fed는 61억달러의 자금을 회수했다.

◆은행 구제금융으로 민영화 효과 줄어

각국 정부가 부실 금융회사를 국유화하면서 국영기업 민영화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KPMG에 따르면 각국 정부는 지난 4년간 금융회사 구제금융 등 명목으로 1조7000억달러를 투입했다. 이는 1981년 이후 수십년간 전 세계 정부가 민영화를 통해 거둬들인 수익 1조8000억달러와 비슷한 액수다. 지난해 말 벨기에가 덱시아은행을 54억달러에 국유화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그리스 정부는 “앞으로 3년간 국유자산 매각을 통해 벌어들일 예상수입이 500억유로에서 190억유로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민영화로 받은 돈을 국가 재정에 충당하지 못하고 자국 은행들의 빚을 갚는 데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최근 재정위기로 인해 유로존 퇴출 우려가 높아지면서 민영화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부펀드들이 민영화 자산을 구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시장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지난 4월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 우체국 지분 26.3%를 프랑스 국부펀드에 21억1000만달러에 팔았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