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도 파견 허용 '불법 파견' 시비 없어…계약직은 무기한 고용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이 한국보다 훨씬 자유스럽다. 계약직의 경우 기업들이 고용하고 싶으면 기간에 제한을 받지 않고 쓸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고용된 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등의 제한은 없다. 파견근로자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건설, 항만을 제외한 모든 업종에 파견근로가 허용된다. 한국에서 금지되고 있는 제조업에 대해서도 일본에서는 파견근로가 허용된다. 그래서인지 일본에선 사내하청근로자의 불법파견 시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사내하청의 불법파견 논란이 한창 일던 2004년 아예 파견법을 개정해 파견근로대상에 제조업을 포함시켜 버렸다. 일본에서는 자동차업종보다 조선 철강업종에서 사내하청근로자를 주로 쓰고 있다.

이정 한국외국어대 법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사내하청근로자와 원청근로자의 일이 다르기 때문에 위장도급 시비는 별로 없다”며 “그래서 정규직-비정규직 간 차별대우 문제도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조업도 파견 허용 '불법 파견' 시비 없어…계약직은 무기한 고용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규제가 적어서인지 일본에서는 비정규직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1990년 881만명에 불과했으나 2000년 1272만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1755만명까지 증가했다. 전체 임금근로자(5300만명)의 33.1% 수준이다.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차별대우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대량해고된 이후 비정규직 보호문제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된 때문이다.

금융위기 때 가장 큰 피해자는 파견근로자다. 2008년 140만명에 달했던 파견근로자는 구조조정의 최대 희생양이 되면서 2010년 96만명으로 44만명이나 감소했다. 경영난을 겪던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화살을 파견근로자에게 돌려 난국타개에 나선 것이다. 반면 채용과 해고가 자유스러운 파트타임근로자는 같은 기간 1152만명에서 1192만명으로 40만명이나 증가했고 계약직은 468만명에서 467만명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파견근로자에 대한 ‘대량학살’은 결국 정규직의 고용유지를 위한 완충역할을 했다.

파견근로자의 실직이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민주당 사민당 국민신당 등 일본 연립정권은 파견법 개정에 팔을 걷어붙였다. 금융위기가 지나자마자 2010년 3월 파견근로자 보호를 위한 파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기존에 허용하던 제조업의 파견근로를 금지하도록 했고 △일용직(30일 이내) 파견금지 △파견허용기간 3년 제한 △파견회사의 수수료 마진율 공개 △위법파견의 고용신청 간주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자민당과 공명당은 제조업의 파견금지를 문제 삼았다. 기업의 경영활동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민주당 연립정권은 지난 3월 제조업의 파견금지 조항을 철회했고 나머지 조항을 챙겨 국회를 통과시켰다. 새로 개정된 법 가운데 3년 이상 파견근로자를 사용할 경우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고용간주규정’은 비정규직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조항으로 평가받았다. 민주당 정권은 이와 별도로 현재 무제한으로 고용할 수 있는 계약직에 대한 사용기간을 5년으로 제한하는 계약직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이다.

일본기업들은 금융위기 때 비정규직을 대량 해고했지만 여전히 비정규직의 의존도가 높다. 미쓰비시상사의 경우 전체 6200여명의 직원 가운데 파견근로자 700명, 계약직 300명 등 모두 1000여명(전체 16%)의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있다. 회사 측은 “사내하청근로자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파견근로자보다는 사내하청이 많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대우도 존재한다. 히타치의 경우 정규직에 대해선 복리후생비가 지급되지만 비정규직에게는 이러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노조가입도 비정규직은 불가능하다. 노조규약에 가입대상으로 명시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고령퇴직자 재고용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코니카미놀타는 해외 법인까지 합해 직원이 3만8000명이며 이 중 비정규직이 1만7000여명에 달한다. 일본 내 근무자는 1만2000명이며 이 중 1500명이 파견근로자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파견직과의 고용을 해지해 지금은 많이 줄었다. 이 회사는 파견직은 주로 연구개발, 소프트웨어프로그램 개발 등에 고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정 교수는 “일본 법원은 비정규직의 임금이 정규직의 80% 정도면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