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바젤월드] '패션 종결자'…시계에도 등급이 있다
시계만큼 ‘가격 스펙트럼’이 넓은 제품도 없다. 스와치처럼 10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는 시계가 있는가 하면, 파텍필립처럼 수천만~수억원을 줘야 손목 위에 올릴 수 있는 시계도 있다.

생김새는 비슷한데 왜 이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걸까. 시계를 단순한 ‘기계 덩어리’가 아닌 핸드백이나 의류 같은 패션 아이템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간다. 시계에도 값비싼 명품과 저렴한 SPA(제조·직매형 의류) 브랜드가 있다는 얘기다.

명품 시계는 대개 수십년 경력의 장인들이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생산한다. 연간 생산량이 한정적인 만큼 공장에서 ‘찍어내는’ SPA 형태의 시계보다 비쌀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시계의 ‘심장’으로 불리는 무브먼트(동력장치)도 다르다.

대다수 명품 시계에는 기계식 무브먼트(태엽을 감거나 손목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따라 동력을 얻는 방식)가 탑재돼 있다. 기계식 무브먼트는 중저가 시계에 주로 장착하는 쿼츠(배터리에서 동력을 얻는 방식) 무브먼트에 비해 제작하는 데 훨씬 손이 많이 간다.

명품 시계에도 등급은 있다. 최고로 치는 브랜드는 바로 파텍필립이다. 차이코프스키, 록펠러, 아인슈타인, 달라이 라마 등을 고객으로 둔 파텍필립은 ‘명품 시계 마니아들의 종착역’으로 불린다.

별다른 기능이 없는 ‘기념 시계’ 스타일도 2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투르비옹(중력으로 인한 오차를 줄여주는 장치) 등 고급 기능을 추가하거나 보석을 넣으면 가격은 곧바로 억대가 된다. 이렇게 비싼데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이런 파텍필립도 경쟁자가 있다. 바쉐론콘스탄틴, 랑게운트죄네, 오데마피게, 브레게, 블랑팡 등이 그들이다. 시계 제조 역사나 기술력, 브랜드 파워, 가격대 측면에서 ‘특A급’ 브랜드들이다. 파텍필립과 이들을 묶어 ‘빅6’로 부르기도 한다. 바쉐론콘스탄틴은 한번도 공장 문을 닫지 않고 257년 동안 시계를 만들어온 최고(最古) 브랜드이며, 랑게운트죄네는 스위스 업체들이 판을 치는 시계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몇 안 되는 독일 브랜드다.
[2012바젤월드] '패션 종결자'…시계에도 등급이 있다
브레게는 1801년 투르비옹을 처음 개발한 ‘천재 워치 메이커’ 아브라함 루이 브레게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만든 브랜드이며, 블랑팡은 비록 한때 공장 문을 닫은 적이 있지만 설립 연도(1735년)로는 가장 오래된 업체다. 오데마피게는 럭셔리 스포츠 워치인 ‘로열 오크’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빅6’의 자리를 위협하는 브랜드들은 수두룩하다. 작은 나사부터 케이스에 이르기까지 시계에 관한 모든 것을 자체 제작하는 예거르쿨트르를 비롯해 율리스나르덴, 쇼파드, 브라이틀링, IWC, 제니스, 해리윈스턴, 글라슈테오리지널, 피아제 등도 시계업계의 최강자군에 들어간다. 위블로, 크로노스위스, 파르미지아니, 로저드뷔, 프랭크뮬러 등은 짧은 역사에도 명품 반열에 오른 브랜드들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상위권 브랜드들은 기술력이나 독창성 등에서 하나같이 ‘일가(一家)’를 이뤘다는 점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측면이 있다”며 “각 브랜드에 대한 고객별 선호도가 다를 수 있을 뿐 ‘A브랜드가 B보다 우월하다’고 일률적으로 말하긴 힘들다”고 설명했다.

롤렉스, 오메가, 까르띠에는 앞선 브랜드에 비해 훨씬 대중화한 명품 시계 브랜드다. 강력한 브랜드 파워만큼이나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빅6’에 비해 생산량이 많은 데다 전반적인 가격대도 낮은 덕분에 ‘명품 시계’ 하면 이들 3인방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일부는 여기에 태그호이어를 포함해 ‘명품 시계 4인방’으로 부르기도 한다. 태그호이어는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세(勢)를 불리고 있다.

[2012바젤월드] '패션 종결자'…시계에도 등급이 있다
중·고가 시계로 분류되는 에독스 론진 라도 오리스 등의 최대 강점은 ‘가격 대비 성능’이다. 주력 모델이 200만~300만원대로 뛰어난 성능을 감안하면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시계 입문자라면 티쏘와 시티즌에 주목할 만하다. 50만~100만원 가격대에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브랜드란 이유에서다.

명품 패션 브랜드를 시계로 만날 수도 있다. ck캘빈클라인과 엠포리오아르마니, 버버리, 폴스미스, 보스 등 웬만한 명품 패션 브랜드는 거의 대부분 시계로도 나온다. 명품 업체가 직접 시계를 만드는 대신 파슬, 타이맥스 등 시계 전문 제조업체들이 대신 만들어준다. 기술력보다는 디자인에 포커스를 맞춘 시계인 만큼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30만~80만원 정도면 손에 넣을 수 있다. 반면 같은 명품 브랜드라도 시계를 자체 제작하는 루이비통 샤넬 디올의 제품 가격은 수백만~수천만원에 이른다.

국내 브랜드로는 로만손이 첫손에 꼽힌다. 로만손은 중·저가 이미지를 버리고 100만원 안팎의 중·고가 시장에 힘을 집중하고 있다. 뛰어난 디자인 덕분에 호평받고 있다. 국내 최대 시계 유통업체인 우림FMG도 루이까또즈, 헤지스를 앞세워 시계 제조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