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찬성 정당 지지율 추락
여론조사기관 "야권 분열로 정권교체는 힘들듯"

추가 구제금융 승인 후 그리스 여론은 안도보다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주권이 훼손됐다는 굴욕감이 가득하다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정치권에 대한 불만도 극에 달해,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찬성한 여야 주요 정당에 대한 지지도는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에반겔로스 베니젤로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구제금융 협상 타결로 악몽과 같은 시나리오는 피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여론은 이를 수긍하지 않는 분위기다.

구제금융이 그리스와 국민보다는 은행을 위한 것이라는 여론이 팽배한 가운데, 대부분은 그리스가 길고 긴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불안과 우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아테네 번화가에서 만난 에바 키리아두라는 55세 여성은 "우리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굴복시켜 끝도 없이 빚만 갚게 하려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학자 출신의 루카 카첼리 의원(무소속)은 "유럽국가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신들의 국가 주요 자산에 대해 외부에 압류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은 처음일 것"이라며 굴욕감을 드러냈다.

카첼리 의원에 따르면 이번 협상에 따라 채권단은 그리스 중앙은행의 금보유고 압류 권한을 갖게 됐고, 이후 발행하는 국채의 법적 문제는 영국법에 따라 룩셈부르크법원에서 처리된다.

그리스인들은 정부가 지난 2년간 독과점 업체와 직능집단의 배만 불리고 경제회복을 위한 구조개혁을 단행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공개된 GPO의 여론조사에서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수용한 집권 사회당(PASOK)과 제1야당 신민당(NP)의 지지율은 각각 13%와 19%로,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조사업체 마크(Marc)의 여론조사에서는 두 정당의 지지율을 합쳐 27%를 기록했다.

그러나 대안을 원하는 그리스인의 열망은 자체 정치제도와 구조 탓에 충족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여론조사업계는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찬성한 양당이 다음 선거에서 연정을 구성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다.

최다 득표를 기록한 당에 추가로 50석이 자동적으로 부여되는 그리스 선거 제도에 따라 한 세력의 득표율이 35~40%만 돼도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마크 조사 결과에서 부동층과 투표 무관심층을 제외하면 두 당의 지지율 합은 38%까지 높아졌다.

이 결과로 시뮬레이션을 한 결과 야당 신민당과 집권 사회당은 각각 117석과 39석을 얻어 총 156석으로 총 300석 의회의 과반을 차지하게 된다.

물론 구제금융 프로그램에 대한 반발로 좌파 정당의 득표율이 과거보다는 높겠지만 사분오열된 좌파 정당이 단일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따라서 오는 4월 선거에서는 신민당과 사회당을 포함, 최소 7개 정당이 의석을 얻을 것으로 보여 연정 협상이 복잡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불안한 정국 전개는 구제금융 조건인 긴축 조치 시행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 각국뿐 아니라 그리스 관료들조차 사석에서는 취약한 그리스 정치권이 긴축 이행법안을 통과시킬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라고 NYT는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하채림 기자 tr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