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워런 버핏의 빵집은 어떻게 보시는지…
워런 버핏이 아이스바를 물고 있는 사진을 기억하시는지. 미국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열리는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매년 연출되는 사진이다. 버핏은 주주들과 카드놀이를 하면서 코카콜라를 마시거나 아이스바를 먹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투자한 회사들의 제품이어서다.

버핏이 벅셔해서웨이를 통해 갖고 있는 코카콜라 지분은 8.6%, 아이스바를 판매하는 회사 지분은 100%다. 그 회사가 패스트푸드체인 데어리 퀸(Dairy Queen)이다. 점포 수가 5700개를 넘으니 미국에서도 큰 편이다. 햄버거 치킨 감자튀김 케이크 등 미국 서민들이 즐기는 메뉴는 없는 게 없다. 우리로 따지면 빵 김밥 떡볶이 오뎅이다. 버핏은 그것도 모자라 직접 입에 물고 판촉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우리 분위기라면 치도곤을 당할 일이다.

버핏은 데어리 퀸을 2009년 중국 골목 상권에 투입했다. 베이징에서 열린 화려한 개업식에는 빌 게이츠도 불렀다. 재미있는 건 세계 최대 부자인 이들이 이튿날 중국의 갑부들을 대거 초청해 만찬을 갖고 기부와 자선을 가르쳤다는 것. 악어의 눈물이 따로 없다.

버핏의 빵집 체인은 하나가 아니다. 과일음료체인 오렌지 줄리어스(Orange Julius), 팝콘가게 카멜콘(Karmelkorn)은 데어리 퀸의 서브 브랜드다. 서부를 중심으로 200여개 점포를 갖고 있는 시즈 캔디즈(See’s Candies)도 벅셔해서웨이의 100% 자회사로 초콜릿과 사탕 가게다.

이케아 회장이자 유럽 최대 갑부인 잉바르 캄프라드도 점포 내에서 빵집을 한다. 빵도 팔고, 피자도 팔고, 감자튀김도 판다. 워낙 값이 싸 가구를 살 생각이 없는 사람들도 이케아에 와서 끼니를 해결한다. 소시지 베이컨까지 포함된 식사가 95센트이고 손님이 없는 월요일 아침에는 아예 공짜로 준다. 회원들에게는 음식값을 깎아주고, 과일과 커피는 무료다. 동네 상인들이 좋아할리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전혀 비난을 받지 않는다. 기부천사들이라서? 그렇지 않다. 버핏이 재산을 자신의 재단에 기부해 세금을 내지 않는 행위가 비난받을지언정 그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가 도마에 오르는 법은 없다. 당국이 경쟁제한적 요소가 있는지를 판단할 뿐, 어떤 업종을 누가 경영하는지는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통틀어 50개도 안 되는 소위 재벌 빵집이 전국 수만개 동네 빵집을 다 죽였다는 것은 애초 말이 안 된다. 동네 빵집이 망하는 것은 효율성과 민첩성에서 경쟁력을 잃었고, 소비자들이 프랜차이즈의 청결과 편의성에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동네 다방이 커피전문점에 밀려 사라진 것과 같은 이치다.

본질은 자영업의 위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거덜난 그리스 다음으로 자영업 비중이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취업자 10명 중 3명이 자영업자다. 베이비부머들이 쏟아져 나와 제2의 인생을 찾는 데 갈 곳이 없다. 몰려드느니 빵집이다. 정부나 정치권은 고용정책의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린다. 골라잡은 게 재벌 빵집이다. 마침 선거철이다. 반기업 정서를 타고 서민표 몰이에는 더없이 좋다. 빵집으로 시작한 재벌 시리즈는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재벌세 신설로 이어진다. 팍팍 먹혀든다. 그저 재벌이란 단어가 싫은 국민들은 환호성이다. 멋모르는 언론들은 장단까지 맞추고.

호텔신라가 논란 끝에 빵집을 접기로 했다. 누가 봐도 동네 빵집의 경쟁 상대는 아니었다. 이런 식이라면 버핏은 6000개 점포를 다 폐쇄해야 했다. 현대자동차는 서울 양재동 본사 사옥과 제주도 계열 호텔에서 운영하던 빵집 2곳을 모두 없애기로 했다. 서울 빵집은 직원들의 간식을 파는 가게다. 이마저 없애야 한다면 회사 곳곳에 최고급 레스토랑과 간식코너를 두고 직원들에게 무료로 개방한 미국의 구글은 아예 회사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버핏이 이제 막 한국 먹거리 시장에 진출했다. 캄프라드도 곧 들어온다. 정치권과 언론은 이들의 골목 장사를 로맨스로 볼까, 불륜으로 볼까.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