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민 혁명'으로 장기독재 저항시위 잇따라
아랍의 봄은 `현재진행형'‥이슬람 세력 부상

올 한해 북아프리카를 비롯한 중동 지역은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랍 국가들은 지난 수십년간 겪은 변화보다 더 많은 변화를 지난 12개월 동안 감당해야 했다.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 리비아, 예멘의 장기 집권하던 독재정권이 차례로 무너졌고, 튀니지와 이집트는 최근 역사적인 민주 선거까지 치렀다.

시리아 등에서 계속되는 저항의 물결은 아직도 `아랍의 봄'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청년 노점상의 분신‥역사의 한 획을 긋다 = 지난해 12월 17일 튀니지 중부의 한 소도시에서 26세 청년 노점상 모하메드 부아지지가 분신자살을 시도했다.

대학졸업 후 직업을 구하지 못해 무허가 청과물 노점상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부아지지가 경찰 단속으로 모든 생계수단을 잃자 극단적인 항의 표시를 한 것이다.

그의 소식은 인구 4만 명의 시디부지드에 순식간에 퍼져 시내 곳곳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지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의 장기 집권 하에 만성적인 실업과 고물가에 시달려 온 주민들의 억눌린 심정이 폭발한 것이다.

올해 1월 4일 부아지지가 숨지자 주변 지역으로 들불처럼 번진 시위는 정부의 강경 진압으로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결국 민중의 요구에 떼밀린 벤 알리 대통령은 같은 달 14일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 1987년 무혈 쿠데타 이후 23년간 지속한 철권통치에 종지부를 찍었다.

튀니지 국화에 빗대어 `재스민 혁명'으로도 불리는 이 혁명은 이후 다른 아랍 국가에 민주화 시위를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북아프리카에서 아라비아 반도까지 = 재스민 혁명에 자극받은 이집트 국민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에 나선 것은 지난 1월 25일.
무바라크 대통령이 군대와 탱크를 동원해 시위를 진압하려 하자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 2월 1일에는 이집트 전역에서 시민 100만명 이상이 거리로 나왔다.

30년간 비상계엄법에 의지해 `현대판 파라오'로 군림한 무바라크 대통령은 결국 시위 발생 18일 만인 같은 달 11일 권좌에서 물러났다.

혁명의 기운은 리비아로 건너가면서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2월 15일 동부 벵가지에서 한 인권변호사의 체포로 불붙은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는 무아마르 카다피의 유혈 진압에 맞서 시민이 총을 들면서 내전으로 비화했다.

3월부터 시작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지원에도 카다피의 강력한 저항으로 지지부진했던 반군의 공세는 8월 말 수도 트리폴리를 함락하면서 전기를 마련했다.

쫓기는 신세가 된 카다피는 결국 10월 20일 고향 시르테 인근에서 반군에게 붙잡혀 `42년간 최장수 독재'라는 기록을 남기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아라비아 반도 남단의 예멘을 33년간 장기 집권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도 `아랍의 봄'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넘지 못했다.

1월 시작된 반정부 시위에 맞서 끝까지 퇴진을 거부했으나 카다피 사망 한 달 만인 지난달 23일 결국 면책을 조건으로 권좌에서 물러난다는 내용의 권력이양안에 서명했다.

◇아랍의 봄은 아직 `현재 진행형' = 아랍연맹과 국제사회의 제재 등 지속적인 압박에도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권력 집착은 확고하기만 하다.

11년째 집권 중인 아사드 대통령은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군경을 동원해 무참히 짓밟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지난 3월 중순부터 시작된 시리아 민주화 시위와 정부의 강경 대응, 유혈 충돌 등으로 인한 희생자 수는 5천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야권 세력이 시리아국가위원회(SNC)를, 정부 이탈 반군이 `시리아자유군'을 각각 결성하는 등 시민의 저항은 점차 조직적으로 발전하는 양상이다.

3월 사우디아라비아 군대와 아랍에미리트(UAE) 경찰까지 동원해 시아파의 시위를 무력 진압한 바레인에서도 반정부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쿠웨이트에서도 부패한 정부 각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이어져 최근 내각이 총사퇴하고 의회가 해산되기도 했다.

사우디나 UAE, 카타르 등 걸프 지역의 군주제 국가들은 넉넉한 사회복지 혜택 덕분에 대규모 시위는 비켜갔다.

그러나 차기 지방선거에서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키로 한 것(사우디)이나, 연방평의회 간접선거인단을 대폭 확대한 것(UAE), 2013년 첫 총선을 실시하기로 한 것(카타르)은 모두 `아랍의 봄'의 간접적인 영향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개국에서는 과도기의 혼란이 지속하는 가운데 최근 선거를 치른 튀니지와 이집트는 점차 질서를 회복하는 분위기다.

예멘에서는 살레의 재판을 요구하는 시위와 정부군과 반정부 세력의 교전이 이어지고 있고, 리비아도 최근 반군 간 충돌과 과도정부 반대 시위가 발생했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는 잇따른 선거에서 온건 이슬람주의 정당이 다수표를 획득하면서 친미 독재정권하에서 핍박받은 이슬람 세력이 권력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두바이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hyunmin62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