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모든 투표소에 웹 카메라 설치하자"
경질 쿠드린 前 재무장관 재기용 의사도 밝혀
푸틴 독재 비판한 美 매케인 의원 "제정신아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앞으로 선거 부정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도록 모든 투표소에 웹 카메라를 설치할 것을 15일(현지시간) 제안했다.
푸틴 총리는 이날 정오부터 TV 생방송으로 진행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지난 4일 총선에서 많은 부정 사례가 있었다는 지적과 관련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9만여개에 달하는 모든 투표소에 비디오 카메라를 설치해 24시간 내내 작동되도록 함으로써 모든 나라가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도록 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푸틴은 내년 3월 대선에서부터 이 같은 조치를 취하자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서 대규모 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지적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미와 이 같은 정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데 대한 답답함을 표현한 발언이었다.
◇ "색깔혁명은 외부세력의 공작" = 푸틴은 총선 부정을 규탄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사람들이 국가의 경제, 사회, 정치 분야에서 일어나는 과정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얘기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모든 행동은 법의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하며 그러길 바란다"고 말했다.
푸틴은 옛 소련권 국가들의 정권 교체 혁명인 '색깔 혁명'이 러시아에서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2004년)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났던 '오렌지 혁명' 등의 색깔 혁명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된 외부 세력의 계획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며 "이런 계획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시위 사태에도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외국 세력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푸틴은 이날 정부에 비타협적인 야권 지도자들이 외국의 자금 지원을 받아 러시아의 혼란을 조장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거듭 주장했다.
그는 "이들(야권 지도자들)은 러시아 여권을 갖고 있지만 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면서 "그들과도 접촉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이는 자주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푸틴은 그러면서 야권 지도자들을 영국 작가 루디야드 키플링의 동화 '정글북'에 나오는 "원숭이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푸틴 총리는 이날 총선 결과가 러시아의 실제 세력 균형을 반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푸틴은 "이번 선거가 객관적이었는지, 정직했는지를 말하자면 내 생각에 선거 결과는 국가 내 세력 균형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여당인 '통합 러시당'이 주도적 지위를 잃은 것도 이상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당이 표를 잃은 가장 큰 이유로 경제 위기로 인한 국민 생활의 악화를 꼽았다.
푸틴 총리는 또 국민의 지지가 사라졌다고 느끼면 곧바로 권력에서 떠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의 지지가 있는지 없는지는 인터넷 사이트나 광장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선거 결과를 통해 결정된다"며 "이런 지지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단 하루도 집무실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지방정부 수장 직선제 부분적 부활 검토" = 푸틴 총리는 자신이 대통령직에 있던 2004년 폐지한 주지사 등 지방정부 수장 직선제 부활 제안과 관련해 대통령의 '필터링' 기능을 유지하는 한에서 지방 주민의 직접 선거를 부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준범죄조직이나 분리주의 세력에 근거한 사람들이 권력을 잡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대통령의 필터링 기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며 "지방 의회에 진출한 정당들이 대통령에게 주지사 후보들을 천거하고 그들 가운데 대통령의 필터링을 거친 후보를 (지금처럼) 지역 의회가 아닌 주민들의 직접ㆍ비밀 선거에 붙여 주지사로 선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푸틴은 지난 9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에 의해 전격 경질됐던 알렉세이 쿠드린 전(前) 재무장관에 대해 "쿠드린 같은 사람들은 필요하며 차기 정부에서 그에게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 크렘린에 복귀한 뒤 그를 재기용할 의사를 밝혔다.
푸틴은 "쿠드린과 그저께도 만났으며 그와 일부 문제에서 이견이 있긴 하지만 본질적은 아니다"며 "그는 우리 팀에서 떠나지 않았고 친구로 남아있다"고 강조했다.
쿠드린 전 장관은 지난 9월 말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푸틴 총리가 서로 자리를 맞바꿔 앉는 차기 권력 구도를 밝힌 데 대해 메드베데프와는 이견이 많아 차기 내각에서 그와 일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가 전격 경질됐었다.
그는 총선 이후에도 선거 부정을 조사하고 중앙선관위원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정부에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푸틴은 또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러시아 3대 재벌 미하일 프로호로프에 대해 "그가 훌륭하고 강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칭찬하면서 "그러나 나도 대선에 출마하기 때문에 그가 성공하길 바란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 "러' 비판한 美 매케인 의원은 제정신 아냐" =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이 자주 자신을 비판한 데 대해 푸틴은 그의 비판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를 향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의 말인 만큼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매케인 의원은 지난 10월 영국 B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리비아 야권의 승리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지도자의 죽음은 세계 모든 독재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는 동기가 됐다며 독재자의 예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과 함께 푸틴 총리를 꼽았다.
푸틴은 "매케인의 발언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에 대한 것이며 어떤 이들은 러시아를 구석으로 몰아 주도적 세력이 되지 못하게 만들길 원한다"며 "서방 국가들은 여전히 러시아의 핵전력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은 "매케인은 베트남전에 참전했으며 그의 손에는 수많은 민간인들의 피가 묻어 있으며 아마 카다피를 살해한 것과 같은 무시무시한 장면이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같다"며 "전 세계 TV를 통해 피범벅이 된 카다피를 어떻게 살해했는지를 보여줬는데 이것이 민주주의냐"고 반문했다.
푸틴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 무인공격기가 카다피의 행렬에 폭격을 가했다"며 "그러고 나서 그곳에 있어서는 안될 (서방) 특수부대의 무전기를 통해 소위 리비아 야권 세력과 반군들을 끌어들여 재판과 조사도 없이 그를 살해했다"고 비난했다.
푸틴은 그러면서 "매케인은 베트남에서 포로가 됐었으며 감옥 뿐 아니라 우물 안에서도 몇 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다"며 "모든 사람은 (그런 일을 당하면) 머리가 이상해지는 법"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푸틴 총리의 '국민과의 대화'는 그가 2000년 대통령이 된 이후 10번째였다.
푸틴은 대통령 시절 6번, 총리 시절 3번 국민과의 대화에 나섰다.
이날 푸틴 총리는 인터넷과 전화 등으로 미리 접수한 질문과 TV 생방송 중에 시청자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했다.
푸틴의 국민과의 대화는 '라시야(Russia)-1', '라시야-24' 등의 국영 TV 방송 채널과 라디오 '마약(등대)', '라디오 러시아' 등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다.
푸틴은 지난해 4시간 26분 동안 국민과의 대화를 지속해 기록을 세웠으나 올해는 이보다 더 긴 4시간 30분 동안 질문에 답해 새로운 기록을 만들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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