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순교자 광장(옛 녹색광장)은 무자비한 독재자의 죽음을 반기는 군중의 들뜬 흥분이 넘쳐나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여성, 아이 할 것 없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이들은 무아마르 카다피 통치 이전 시절의 국기를 흔들며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카다피의 시신 사진을 실은 포스터를 발빠르게 만들어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리비아인들은 이제 카다피의 자식들 가운데 유일하게 리비아에 살아있는 것으로 알려진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의 행방을 궁금하게 여기고 있다.

카다피의 아들딸 8명 가운데 아들 셋은 내전 과정에서 사망했으며 나머지 세 아들과 딸은 알제리와 니제르에 피신해있다.

사이프 알-이슬람은 카다피의 가장 유력한 후계자이자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여겨져 온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이슬람의 칼'이란 뜻이다.

영국 런던정경대학(LSE)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유창한 영어를 구사해 한때 서방 진영은 그를 친서방적인 인물로 받아들였다.

그는 2004년 미국과 유럽을 상대로 한 협상에 나서 리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데 핵심 역할을 했다.

카다피 재단을 통해 자선사업을 하고 언론 등 여러 분야의 개혁을 추진했으며 1990년대 이슬람 반군과의 화해를 주도했으나 그의 이런 노력은 지배층 내부의 반대에 부딪혔다.

아버지와 함께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된 그는 내란이 일어나자 결사 항전을 다짐했으며 지난 8월 트리폴리가 함락됐을 때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이내 외국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 건재를 과시하기도 했다.

리비아 과도정부 관계자는 사이프 알-이슬람이 카다피가 마지막까지 은신했던 시르테에서부터 니제르와의 국경인 남쪽으로 도주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상처를 입고 즐리탄의 한 병원에 붙잡혀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해당 병원 관계자는 이런 주장을 부인했다.

전문가들은 사이프-알 이슬람의 행방이 오리무중이지만 아버지가 사망했기 때문에 그가 리비아에서 과도정부에 대한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여력은 없다고 분석했다.

(트리폴리연합뉴스) 한상용 특파원 gogo21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