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군에 생포된 것으로 알려진 무아마르 카다피(69)는 42년간 리비아를 철권통치한 독재자다.1963년 벵가지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간 뒤 왕정타도를 목표로 하는 자유장교단을 조직했다.

육군 대위 시절이던 1969년 9월1일 동료 장교들과 함께 수도 트리폴리를 공격,기습적으로 쿠데타를 감행했다.당시 신병 치료를 위해 터키에 체류 중이던 국왕 이드리스 1세는 객지에서 퇴위당해 터키로 망명했다.

사실상 ‘무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카다피는 쿠데타 직후 군 총사령관에 올랐다.

그 해 11월에 잠정헌법을 공포한 이후 신생 리비아 공화국의 최고정치기구인 혁명지도평의회의 의장에 취임했다.집권 초기엔 제도개혁과 복지확대 등을 통해 한때 ‘녹색혁명’을 이룬 지도자라는 평도 들었다.

카다피는 국가원수에 오른 뒤에도 대통령 직책을 거부한채 공식적으론 대령 직위를 유지했다.1977년 리비아를 공화국 체제에서 ‘자마히리야(민중에 의한 정부)’ 체제로 바꿔 본격적인 독재에 나섰다.

자마히리야 체제 선언과 함께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도 폐지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엔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실시했다.1988년에는 270명이 사망한 미국 팬암항공기 폭파 사건을 일으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다.테러 세력에게 자금을 대줬다는 의혹도 집중적으로 받았다.

서방 정보기구의 표적이 돼 트리폴리 관저가 폭격을 당하는 등 수십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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