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7만달러 vs 150만달러…갈수록 격차 커질 듯

금융 자본주의의 탐욕에 항의하는 `월가 점령' 시위가 미국 정치권의 새로운 논쟁거리로 비화한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월스트리트 금융권의 관계가 상당히 소원해진 사실이 선거 자금 모금액 통계에서 드러났다.

오바마가 올해 월스트리트에서 거둬들인 `실탄'이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크게 못미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자체 분석 결과 롬니 전 주지사가 올봄 이후 투자은행인 모건 스탠리와 헤지펀드인 하이브릿지 캐피털 매니지먼트, 사모투자회사인 블랙스톤 등 월가의 대표적인 금융기관 직원들에게 받은 돈이 150만달러에 이른 반면 오바바는 27만달러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고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들 업체은 지난 2008년 대선에서 두 사람이 월가에서 확보했던 모금액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회사들이다.

2008년 당시 어느 회사보다도 많은 100만달러를 오바마에게 쾌척했던 골드만삭스 직원들은 올해는 오바마에게 4만5천달러만 내놓았지만 롬니에게는 이보다 7배 이상 많은 35만달러를 바쳤다.

이런 현상은 오바마에 대한 금융권의 불만이 가중되면서 이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롬니 측의 노력이 먹혀들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물론 NYT가 분석한 업체들이 월스트리트 금융권의 전부는 아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이 올 한해동안 거둬들인 모금액은 총 1억달러로 롬니의 모금액보다 여전히 3배가 많다.

그러나 두 사람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기부금 격차는 오바마 측이 최근 시위대의 분노를 옹호하고 금융권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내다봤다.

오바마는 시위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월스트리트 달래기에 주력했다.

금융권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강화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월스트리트와 사이가 뒤틀어졌고 이는 내년도 대선을 앞둔 그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기 때문이었다.

오바마 측은 감독과 규제 강화가 월가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시위대가 행동에 나선 지난달 17일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당초 별 주목을 받지 못하던 시위대의 구호가 미 전역은 물론 세계 각국으로 확산되고 정치권에서도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자 이들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워싱턴 백악관에서 시위가 열린 지난 7일 월가 시위는 미국인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라고 밝혔다.

시위대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지만 이번 시위를 재선에 유리하게 활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오바마 측은 그러나 이런 스탠스를 유지하는 한 월가 모금액의 편중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에는 당혹스런 모습이다.

오바마 캠프의 벤 라볼트 대변인은 "롬니가 더 많은 돈을 모은 것은 월가의 개혁조치들을 폐기하고 더 많은 방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고 몰아부쳤다.

이어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고 그러한 위기가 국민들의 저축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방안들을 도입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오바마와 달리 롬니는 `베인 캐피털'이라는 사모투자회사를 경영한 적이 있는 기업인 출신이다.

그동안 침체에 허덕이는 경제를 살릴 적임자의 이미지를 부각하는데 주력하면서 친(親)월가 행보를 보여왔다.

최근에는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를 지원하던 다수의 경영자들이 그에게 지지 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러나 월가 시위에서 보이듯이 대형 은행에 대한 미국인의 분노가 결코 간단치 않은 상황인 만큼 롬니로서도 `재계의 친구'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만은 피해야 할 것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wolf8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