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발표된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중공업의 합병으로 일본 산업계에 '덩치 불리기'가 확산될 조짐이다. 다음 타깃은 '자동차'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그만큼 현재 일본 기업들의 상황은 절박하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기업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몰렸다는 분석이다. 다카하시 다쿠야 다이와증권 투자정보부장은 "일본 경제가 엔고(高)와 정부 정책 혼란으로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거대 자본들이 생존을 건 모험에 나섰다"고 평가했다.

◆"자동차도 대형화 해야"

합병 바람은 전방위적이다. △히타치 도시바 소니가 액정표시장치(LCD) 부문 합병을 추진하고 있는 전자 △도요타 혼다 등이 중견업체를 인수해 8개의 회사가 6개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자동차 △신일본제철에 스미토모공업을 더해 세계 2위 철강회사를 만들려는 움직임 △전일본공수(ANA)와 일본항공의 국제선 합작 논의 등 일일이 꼽기도 어렵다.

시장의 기대는 크다. 히타치와 미쓰비시의 주가는 합병계획이 발표되자마자 4% 이상씩 뛰었다. 새벽에 열린 미국 뉴욕증시에서도 히타치의 ADR(주식예탁증서) 가격이 2% 이상 올랐다. 히타치와 미쓰비시가 합칠 경우 매출 규모는 12조엔대로 불어나게 된다. 일본 제조업체 가운데 도요타자동차에 이어 2위에 해당한다. 한국 최대 중공업회사인 현대중공업(22조원)의 8배 규모다. 공룡과 같은 덩치에 걸맞게 업종도 조선 원자력발전 정보기술(IT) 등 다양하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도요타 닛산 등이 중소업체를 인수해 대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쟁력 약화로 글로벌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마지막 카드로 합병을 선택하고 있다"며 "원점으로 돌아가 새로 시작하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공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더 강력한 경쟁 상대를 맞게 되는 셈"이라며 "일본 업체들과의 적극적인 제휴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화는 해외에서도

일본 기업들의 생존을 위한 대형화는 해외 기업 인수로 이어지고 있다. 신일본제철과 스미토모금속은 인도 업체들과 합작으로 신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고,도시바는 스위스의 전력계기 업체인 랜디스기어와 이탈리아의 벤처업체 안살도를 사들이기도 했다. 이 밖에 코니카,NEC 등도 올 들어 해외 업체 인수 · 합병(M&A)을 성사시켰다. 이들 철강,전기전자 업체뿐 아니라 기린,아사히 등 주류업체들도 해외 업체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고 중소기업들의 해외 기업 인수를 통한 신시장 진출도 가속화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일본 인구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돼 해외 진출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일본 기업들이 갖고 있는 풍부한 현금과 엔화 강세도 해외 기업 M&A를 부채질하고 있다.

국내 기업 간 비용절감을 위한 광범위한 협력 발표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도쿄일렉트론은 어드반테스트 등 다른 반도체 장비업체들과 비핵심 부품인 외장재 등을 공용화하기로 했다. 단순 부품뿐 아니라 핵심 부품까지 협력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닛산과 혼다 등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덴소,아이신 등 자동차 부품 업체들도 제조업체에 공급하는 부품을 표준화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구매력을 강화해 비용을 절감하겠다는 계획이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 김희경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