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주식회사 미국'의 선택
미국 경기 회복이 미약한 데는 수없이 많은 이유가 있다. 먼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정부 부채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가계든 기업이든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지고 있는 곳이 잘될 리 없다. 경제 주체라는 점에서 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부채를 줄일 혁신적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정쟁으로 날을 지새우고 있다.

《이번에는 다르다(This time is different)》의 저자인 카르멘 라인하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1800년대 이후 사례 연구를 통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이 90%를 넘으면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된다"는 점을 밝혀냈다. 그는 미국의 실질 공공부채가 GDP의 124%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빚 문제는 미 달러화 가치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경제 전망이 어두워지면 화폐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이점은 웬만큼 누렸다. 게다가 미국 통화당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안정을 꾀하고 수렁에 빠진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 2조달러가량을 풀었다.

미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해외 자금의 미국 직접 투자가 늘어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1980년대부터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미국 경제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해외에서 생산적인 자금이 계속 유입된 덕분이었다. 미 경제분석국 통계에 따르면 1982년부터 2007년까지 25년 동안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보다 미국으로 유입된 자금이 6조달러 이상 많았다. 이에 반해 지난해에는 1150억달러 규모의 자금 순유출 현상이 빚어졌다.

△낮은 세율 △안정적인 물가 △강(强) 달러 △혁신적 기업마인드 등 미국의 장점이 퇴조하면서 투자 매력을 상실한 탓이다. 설혹 미국에 투자해 수익을 낸다고 해도 달러화 가치가 떨어진다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건질 게 없다. 이 밖에 주택시장 거품 붕괴에 따른 가계 자산가치 하락과 고용 시장 악화에 따른 소비 위축 등도 미국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들이다.

'주식회사 미국'이 초강대국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선 하루속히 정부 지원혜택(entitlement)을 줄여 균형 예산을 이룰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재정확대로 수요를 늘리는 쪽으로 가야할지,아니면 정부를 원인 제공자로 규정하고 자유 시장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동안의 정책 행태에 비춰볼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재임에 성공한다면 케인시안 정책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확대와 통화당국의 양적 완화 조치가 되풀이되고,부자들에 대한 과세가 강화될 전망이다. 그렇지 않고 공화당이 집권하게 되면 이론적으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이론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하이에크는 시장은 자생적 질서를 통해 자본주의 문제를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3년 동안 미국이 겪은 변화를 지켜보면서 미국이 금세 무너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때가 적지 않았다. 시장에 대한 믿음이 많이 손상됐고,위기 때마다 당파성은 더욱 부각됐다. 그래도 미국은 자본주의 맹주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번영은 위기를 딛고 온다"(게리 베커 시카고대 교수)는 말을 태평양 건너에서 확인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