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첫 스타트는 잘 끊은 것 같아요. "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의 발레리나 서희 씨(25)는 1일(현지시간) 뉴욕 링컨센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발레 '지젤'에서 주연인 지젤 역을 마친 뒤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발목 부상으로 인해 리허설 기간이 1개월도 채 안 될 정도로 짧았지만 세계 무대에서 기교와 연기를 마음껏 과시했다"며 만족감을 내비쳤다.

서씨가 마임과 탁월한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지젤 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던 데는 ABT 코르 드 발레(군무진)에서 4년 동안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기초를 다진 덕분이다. "4년간 코르 드 발레 멤버로 활동하면서 지젤에서 안 해 본 역할이 없어요. 뒤에 서 있는 친구 역할,앉아있는 사람,돌아다니는 사람 등 모든 역할을 해봤습니다. "

공연 중 가장 세심하게 처리하려고 노력한 대목은 귀족 알브레히트(데이비드 할버그 분)와 사랑에 빠졌다가 배신당해 죽은 뒤의 유령 연기였다고 한다. 살아서 사랑에 빠졌을 때는 눈을 중심으로 한 표정 연기가 가능하지만 죽은 후 윌리(결혼 전에 죽은 처녀 유령) 연기를 할 때는 상대적으로 몸 동작을 많이 함으로써 관객과 교감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설명했다. 지젤이 영혼으로 변하는 과정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어야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조의 호수'와 함께 발레의 정수로 꼽히는 지젤의 주인공 역을 맡기 위해선 정교한 발동작 기교뿐 아니라 표현력이 탁월해야 한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온다.

무용수가 춤기교만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극중 캐릭터의 성격을 파악하고 역사 · 문화적 배경을 충분히 알아야 훌룡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스페인 문화를 공부하지 않고는 돈키호테의 역할을 소화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무용수로 성공하기 위해선 근육을 키우기 위한 별도의 체력 단련에도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3년 스위스 로잔콩쿠르에서 입상한 서씨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거쳐 4년 전 ABT와 인연을 맺었다. 코르 드 발레로는 이례적으로 2009년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을 맡아 실력을 인정받아 작년 7월 솔리스트가 됐다. 솔리스트가 지젤 주인공 역을 맡은 것 역시 전례가 드문 일이라고 한다.

발레리나로 성공하고 싶은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서씨는 이렇게 답했다. "경험에 비춰볼 때 좋아하는 일이라고 믿고 열심히 하면 되는 것 같아요. 남과 비교하지 말고요. 사람들은 배움의 대상이지 결코 질투의 대상이 아니잖아요. "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