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으로 리비아의 동부 지방이 무아마르 카다피 정부의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카다피 통치 시절의 어이없는 의혹 사건이 재조명 되고 있다.

1998년 벵가지의 한 아동병원에서 400명 이상의 아이들이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집단 감염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벵가지가 카다피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당시 상황과 관련해 관계자들이 정부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아는대로 사실을 말할 수 있게 돼 사건 진상 규명이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하고 있다.

이 사건은 이 병원에서 일하던 팔레스타인 출신 의사 한명과 불가리아 출신 간호사 5명을 기소해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을 주사한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종결 처리됐다.

이들의 범행 동기는 검찰이 주장한 대로 리비아 국민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었거나 아니면 사악한 외국 정부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이 당시 유죄판결의 취지였다.

그러나 이 사건을 지켜본 서방국가들은 이들을 희생양으로 인식했다.

이 병원 실험실에서 15년간 근무한 아멜 알사이디는 아이들이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에이즈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확신하지만 누가 그런 악마같은 짓을 저질렀는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24일 말했다.

알사이디는 "이 범죄가 고위 차원에서 계획된 것이 틀림없다"면서 병원의 위생 관리 부실로 발생했을 것이라는 외국 의사들의 추정은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알사이디는 "만약 십여명의 아이들이 감염됐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400명 이상이라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알사이디는 그 근거로 감염된 아이들이 에이즈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을 수혈받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이 아이들이 위장병 치료를 받던 환자였으며 단지 정맥주사를 맞았을 뿐"이라고 밝혔다.

유죄 판결을 받았던 외국 의료진은 투옥과 고문, 사형 선고까지 받았지만 2007년 유럽연합(EU)국가들이 압력을 가해 불가리아로 추방됐다.

이들은 불가리아에서 사면과 함께 자유를 찾았으며 팔레스타인 출신 의사는 불가리아 국적을 취득했다.

이 병원에서 일했던 알리 알쿠와이티도 이 사건 때문에 아이들의 엄마들에게 구타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지만 지금도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이들이 정맥 주사를 통해 감염된 것이 틀림없으며 일부사람이 주장하는 재사용 주사기를 통한 감염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 병원에서는 1회용으로만 사용이 가능한 플라스틱 캐뉼러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하고 유죄판결을 받은 외국인 간호사들이 병원의 여러 분과에 분산돼 일하고 있었지만 감염은 3개 분과 중 한 분과에서만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감염이 사고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누군가가 혼란을 조성하려하거나 이 도시 주민들에 대한 극도의 적개심에서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병원에서 일했던 이름이 공개되지 않기를 원한 다른 한 의사는 "무아마르 카다피"라면서 "그가 이 도시를 벌주기 위해 했음이 틀림없다"고 말했지만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벵가지<리비아> dpa=연합뉴스) maroonj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