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준의 한국정치 미국정치] 美 예산처리, 한국 국회와 닮은 꼴
대한민국은 시한 30일 전까지 국회에서 예산 통과를 시키지 못하면 행정부는 자동으로 작년도 예산에 준해 예산운용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이 시한이 지켜진 적은 물론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멈춰선 적도 없다.
지난 4월4일은 전 미국 국민을 긴장케 한 날이었다. 그 날 밤 12시까지 합의를 보지 못하면 정부가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었다. 16년 전 클린턴 정부 시절의 악몽이 반복되는 게 아닌지 다들 우려했다. 다행이 법정 시한을 한 시간 남겨놓고 극적인 합의를 이뤄 정부폐쇄는 피했다.

미 의회는 그동안 2011 회계 연도(10월1일~9월30일까지)가 거의 절반이 지나도록 잠정예산을 찔끔 찔끔 통과시키면서 마치 죽어가는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처럼 예산을 처리해 왔다.

극적인 합의안의 마지막 의회통과에 놀랍게도 공화당 의원 59명은 끝내 정부를 폐쇄해야 한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민주당의 108명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의 압력에 굴복했다며 이에 가세했다. 이 법안마저 압도적인 통과는 아니었다.

하지만 싸움은 이제부터다. 예산이 통과됐어도 행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는 채무상한선을 올릴 수 없고 공화당은 채무 한도를 높이는 데 반드시 지출 감축조치와 연결시킬 것이다. 현재 상한선은 14조3000억달러로 책정돼 있는데 이미 14조달러에 육박했고,6월 중순이면 상한선을 넘게 된다. 때문에 법을 고쳐 상한선을 높이지 않으면 미국 정부는 국가 채무를 이행할 수 없는 상황(디폴트) 에 빠지게 된다. 이 경우 정부 채권 등 주식시장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치고 자칫 제 2차 금융위기가 초래될 수도 있다.

해법은 정부가 돈을 더 이상 안 꾸는 것인데,그러려면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세금을 올리는 두 가지 방안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정부 지출을 줄이긴 어렵다. 현재 정부 예산의 60%가 이른바 의무적 보상,예컨대 메디케어나 국민연금에 투입된다. 이를 줄이면 65세 이상 노인들뿐아니라 일생을 벌어 여기에 적금해 온 50세 이상의 은퇴 준비 세대들을 분노하게 만들 것이다. 이들은 가장 투표율이 높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세금을 올리는 건 더 어렵다. 민주당은 부자들만이라도 세금을 올리자고 주장하지만 공화당은 오히려 상위 소득층의 세금 부담을 현 35%에서 25%로 줄이자는 입장이다. 이처럼 양당의 입장차가 워낙 커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여튼 현재 누적 부채 14조달러는 미국 국민 1인당 5만달러의 빚을 안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 오바마도 빚을 더 늘리자고 말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미 의회에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극우파인 '티 파티'의 지지로 당선된 젊은 초선의원이 자그마치 87명에 달한다. 이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채무상한선을 절대 올려선 안 된다는 입장이니 이들을 설득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다. 예산문제에 관한한 대한민국 국회와 별로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김창준 <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ㆍ한국경제신문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