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시위사태 대응 방안에선 이견 노출

유럽연합(EU)이 수천명에 달하는 회원국 국민들을 리비아에서 철수시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상호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고 AP와 AFP 등 외신들이 21일 전했다.

하지만, EU 국가들은 42년 째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에 대한 대응 방식과 수위를 놓고 이견을 드러낸 채 공동보조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리비아 정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지만, 시위대는 국영 방송국을 불태우고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경찰서에 불을 지르는 등 더욱 대담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카다피의 장기집권에 대한 혁명적 수준의 도전이 점차 고조되는 가운데 카다피의 차남이자 리비아의 정권의 후계자로 유력한 사이프 알-이슬람은 국영 TV를 통한 연설에서 "리비아에 피의 강물이 흐를 것"이라며 "무기를 들고 마지막 총알까지 싸우겠다"면서 내전 돌입을 경고했다.

사태가 악화됨에 따라 EU 회원국들은 리비아에 거주하는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철수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EU는 회원국에 해외에 있는 국민들을 철수시키도록 명령할 권한은 없지만, 외무장관들의 합의를 통해 공조를 취할 수는 있다.

포르투갈은 21일 자국민과 다른 EU 회원국 국민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트리폴리에 C-130 허큘리스 군용 수송기 1대를 급파했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외무장관 회의에 참석 중인 루이스 아마도 포르투갈 외무장관은 리비아 동부 도시 벵가지에서 자국민 50여 명을 철수시키기 위해 다른 비행편이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트리니다드 지메네즈 스페인 외무장관은 "리비아의 상황을 극히 우려하고 있다"며 "EU 회원국 국민들을 리비아에서, 특히 (시위가 격한) 벵가지에서 철수시키기 위해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와 불가리아는 자국민의 리비아 여행을 전면 금지했고, 영국의 석유회사 BP는 리비아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철수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이탈리아 최대의 첨단기술산업 그룹인 핀메카니카는 이미 직원들을 철수시켰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상황 전개에 따라 철수 필요성을 판단할 것"이라며 "가장 급한 것은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는 것이고 영국민이 리비아를 떠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런던 주재 리비아 대사를 소환, 유혈진압의 배후를 밝히는 조사를 요청했다.

프랑스의 로랑 보끼에 유럽장관은 "현재까지 리비아에 있는 약 750명의 프랑스 국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은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편 유럽국가들은 리비아 사태에 대한 대응 방식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와 체코 공화국 등은 리비아 사태에 유럽국가들이 너무 깊숙이 개입해선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프랑코 프라티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우리 유럽국가들이 개입을 원한다거나 민주주의를 수출하려 한다는 잘못된 인상을 줘서는 안된다"며 "우리는 지원하고 평화적인 화해를 지지해야 하며, 이것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앞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지난 19일 자신의 오랜 친구인 카다피의 신경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카렐 슈바르첸베르크 체코 외무장관도 EU가 리비아의 반정부 시위에 "지나치게 개입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렉산더 스텁 핀란드 외무장관은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에 대한 유럽 방문 금지와 역내 자산 동결 등 제재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텁 장관은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리비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외면할 수 있으며, 카다피에 대한 제재와 방문 금지 조치를 논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장 아셀보른 룩셈부르크 외무장관도 "고도로 훈련받은 저격수들이 민간인들을 사살하고 있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제네바연합뉴스) 맹찬형 특파원 mange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