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퓌르 라그나르 그림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2008년 금융위기 때 파산한 아이스세이브은행의 영국과 네덜란드 예금주들에게 40억유로(54억달러)를 지급키로 합의한 데 대해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아이슬란드 의회는 지난주 란즈방키의 온라인 자회사인 아이스세이브 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는 영국과 네덜란드 예금주들에게 은행 파산으로 빚진 돈을 되갚아주기로 한 정부 간 합의를 44 대 16으로 승인했다. 이번 합의안은 지난해 아이슬란드 국민투표에 부쳐졌다가 부결된 안을 아이슬란드에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한 것이다. 수정안은 아이슬란드의 요구를 받아들여 금리를 5.55%에서 3.2%로 낮추고 상환기간도 연장했다.

그러나 그림손 대통령은 전체 주민 31만8000명 가운데 20%가량인 4만2000명 이상이 국민투표를 요청하는 진정서에 서명했다며 수정안도 다시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현재 영국과 네덜란드 예금주들은 자국의 예금보험제도에 따라 돈을 돌려받은 상태로 아이슬란드 정부는 양국 정부에 돈을 갚아야 한다.

그림손 대통령은 "조만간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실시된 국민투표는 아이슬란드에서 '상징적' 존재인 대통령이 의회 결정을 따르지 않고 국민투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한 첫 번째 사례였다. 당시엔 아이슬란드 유권자들의 90%가 반대표를 던졌다. 수정 합의안은 이전 안에 비해 훨씬 높은 지지를 얻어 의회를 통과했지만 국민투표에서 과반의 찬성표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은행과 규제당국의 잘못을 세금으로 메워주는 것은 부당하다며 반대해왔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아이스세이브 부채의 최소 86%가 란즈방키의 남은 자산 매각을 통해 충당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영국과 네덜란드 정부는 아이슬란드가 돈을 갚을 때까지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