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또 거짓말할 것이어서 가치없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 시절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의 불능화 및 궁극적인 폐기를 일선에서 진두진휘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동아태 차관보가 27일 공개적으로 6자회담 무용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힐 전 차관보는 이날 스탠퍼드대 안보협력센터 초청 강연에서 북한이 작년 가을 방북한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교수에게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한 것은 종전까지 그런 시설이 없다던 주장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라면서 "6자회담을 다시 시작해도 북한이 이처럼 거짓말을 할 것이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주장했다.

힐 전 차관보는 "6자회담 프로세스는 끝났다"는 인식을 드러내면서 6자회담에는 더 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고 강연에 참석했던 소식통이 전했다.

북한과 오랫동안 협상경험이 있는 힐 전 차관보의 이 같은 주장은 최근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미국 행정부를 중심으로 가속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또 그는 북한이 2009년 4월에 우라늄 농축시설 건설을 시작해서 지난해 말께 공사를 완료했다는 헤커 박사의 전언에 대해 "그것은 마치 김일성이 36개홀 연속해서 홀인원을 했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라는 비유를 들어 북한이 그처럼 짧은 기간에 관련시설을 구축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미국 행정부의 정책은 단순히 북한 핵의 확산을 저지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며, 북한의 핵무기 보유 자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불능화 과정으로 원상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힐 전 차관보는 "만일 북한이 핵무기를 계속해서 보유하게 된다면, 이는 전 세계의 비확산체제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이 된다"면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궁극적으로 역내 다른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을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힐 전 차관보는 미국 행정부에 대해 중국 정부로 하여금 북한 핵문제 해결에 진지하게 나서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한문제를 다뤄나가는 과정에서 한국이 원치 않는 대북정책을 밀어붙여서는 안 되며, 동북아 역내 군사적 준비태세를 점점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사일 위협을 포함해 북한의 군사적 도전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전력을 재배치해야 한다고 미국 행정부에 권고했다.

(워싱턴연합뉴스) 고승일 특파원 ks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