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부담이 가시화되고 있다. 재정위기 확산 방지가 최대 당면과제인 유럽에서조차 물가억제가 다시 통화정책의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13일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후 기자회견에서 예상보다 강한 톤으로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감을 표시했다.

트리셰 총재는 "주로 에너지 가격 때문에 단기적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나타나고 있다"며 "향후 물가흐름을 면밀히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은 ECB가 판단하는 물가안정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서도 "ECB는 늘 (물가 상승을) 경계하고 있으며 금리 인상을 미리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에 대해 ECB의 통화정책 비중이 물가 상승 억제 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했다. 트리셰 총재의 발언은 지난해 12월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2%로 2년 만에 처음으로 ECB의 목표치(2%)를 웃돈 상황에서 나왔다.

제임스 닉슨 소시에테제너랄 이코노미스트는 "ECB가 예상 수준으로 물가상승률이 완화되지 않으면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조건적인 경고"라며 "원자재값 상승이 소비자물가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트리셰 총재의 발언 후 시장에선 내년까지는 금리 인상이 없을 것이란 당초 전망과 달리 ECB가 연내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예상이 나왔다. ECB는 20개월째 최저수준인 연 1%의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영국중앙은행(BOE)도 이날 기준금리를 연 0.5%로 유지키로 했다. 22개월째 동결이다. 그러나 영국 역시 지난해 11월 물가상승률이 3.3%를 기록했고 식료품 인상 등으로 인해 몇 달 내 물가상승률이 4%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5월 금리 인상설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트리셰 총재의 발언으로 금리 인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유로화는 1.8% 치솟은 유로당 1.3371달러에 거래됐다. 6개월여 만에 가장 큰 하루 상승폭이다. 전날 포르투갈 국채 입찰이 무난히 마무리되고 이날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국채 입찰까지 성공적으로 이뤄진 것도 유로화 강세에 영향을 미쳤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