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애리조나주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용의자 제러드 러프너(22)의 사건 당일 행적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이 12일 보도했다.

러프너는 사건 당일인 지난 8일 아침 대형마트에 들러 탄약을 구입했으며 교통신호 위반으로 당국의 조사를 받았으나 경고만 받은 채 풀려난 것으로 드러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애리조나주로 향한 가운데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 속속 드러나는 범행 당일 행적 = 러프너는 8일 아침 월마트 2곳을 방문해 탄약을 구입했다.

먼저 찾은 월마트에서 점원이 느린 행동을 보이자 다른 월마트로 가 탄약을 샀다.

쇼핑을 마친 러프너는 승용차로 이동하다 적색 신호를 위반했다.

곧이어 애리조나주 어류ㆍ야생동물보호국 공무원이 러프너의 차를 길 가로 유도해 그를 조사했다.

이 공무원은 러프너의 운전면허증과 차량 등록정보를 확인했으나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해 차량을 수색하지는 않았으며 경고만 하고 러프너를 풀어줬다.

애리조나주 어류ㆍ야생동물보호국은 러프너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곳은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세이프웨이 식료품점에서 수마일 떨어진 곳이라고 밝혔다.

러프너는 또 범행 당일 집에 있던 차량에서 검은 가방을 꺼냈으며 이를 본 아버지가 화를 내며 왜 그러느냐고 따지자 중얼거리며 집을 뛰쳐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 가방에서 러프너의 범행 동기를 밝혀줄 핵심 단서가 발견될 수 있다고 보고 집중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러프너는 범행 전날인 7일 밤에는 체비 노바 승용차를 몰고 간 모텔에서 잠을 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현재 러프너의 집에 주차된 이 차량도 조사 중이다.

◇ 정신이상 증세 보였으나 진료 거부 = 러프너는 피마 커뮤니티 칼리지 재학 시절 정신불안 증세를 보여 학교 측으로부터 진료를 권고받았으나 이를 거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마 커뮤니티 칼리지는 캠퍼스 경비원들과 충돌하고 유튜브에 이상한 동영상을 올리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는 러프너를 정학시키고 정신 진료를 받는 것을 복학의 조건으로 달았으나 러프너는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면서도 진료를 받지 않는 사람들의 처리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으며 정신이상 증세가 있는 사람들에게 진료를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이번 사건으로 정신병이 폭력성과 연계되면서 정신병 환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조장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오바마, 추모식 참석 위해 애리조나행 = 오바마 대통령은 12일 이번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애리조나주로 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총기난사로 총상을 입은 가브리엘 기퍼즈(40) 연방 하원의원이 입원 중인 병원을 방문하고 애리조나 대학 농구경기장에서 열리는 추모식에 참석해 희생자 유족들을 만나고 추모연설을 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추모 연설은 희생자들을 회고하고 총기난사 용의자를 제압한 시민들의 용기를 치하하며 국민적 단합을 호소하는 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퍼즈 의원의 동료 하원의원들은 이번 총기난사 사건을 강력히 규탄하고 희생자들을 위로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잘 보여 '울보'로 알려진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우리의 가슴은 찢어지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며 "우리 미국인들은 지금의 난국을 헤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날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서 한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러프너의 총기난사 행위는 정치적 견해에서 비롯된 "극단주의"라고 규탄했다.

한편 이번 사건 이후 두문불출하고 있는 러프너의 부모는 지난 12일 성명에서 어떤 말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희생자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밝혔다.

◇ 애리조나 법원, 러프너 재판 기피 = 이번 총기난사 사건 용의자 러프너에 대한 재판을 맡게 된 애리조나 연방판사들은 13일 스스로 재판을 기피하는 결정을 내렸다.

판사들은 이번 사건 희생자들 가운데 동료 존 롤 판사가 있어 재판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을 기피 이유로 들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에 대한 재판은 래리 번스 캘리포니아 연방판사가 맡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의원들의 신변 안전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짐 맥더모트 연방 하원의원(민주.워싱턴)을 전화로 위협한 30대 남성이 체포됐다.

이름이 터너 해버먼(32)인 이 남성은 지난해 12월9일과 10일 사이 맥더모트 의원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맥더모트 의원과 그의 친구, 가족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내용의 메시지 2건을 남겼다.

해버먼은 맥더모트 의원이 부자들에 대한 감세를 연장하는 데 반대했다는 점에 불만을 품고 이같은 행동을 했으며 과거에도 선출직 공무원들을 협박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ljglo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