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탈자도 총기구입 가능" 비판에
"기퍼즈 의원도 총기소유 지지" 주장도

미국 애리조나주(州)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총기소유 관리제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제러드 리 러프너가 사건 이전에 `수상한 행동'을 보였는데도 어떻게 총기 소유가 허용됐는지 의문이 제기되면서 애리조나주의 허술한 총기소유법이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반면 희생자인 가브리엘 기퍼즈 의원조차 예전부터 총기 소유를 지지해 왔고, 잘못된 것은 총기 자체가 아니라 이를 범죄에 악용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하며 여전히 총기소유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9일자 기사에서 용의자 러프너가 지난 2007년 마약용품 소지 경범죄로 체포된 적이 있으며, 또한 연방정부에 대한 비판,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대한 자신의 관심 등을 유튜브에 게시함으로써 수년 전부터 경찰의 주목을 받아왔는데도 애리조나 투산에서 구경 9㎜짜리 반자동 권총을 구입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최근 애리조나주는 더 나아가 21세 이상일 경우 특별허가 없이 총기를 갖고 다닐 수 있게 하는 법을 통과시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지난해에는 연방정부가 무기 구입 시 구입자 관련 정보를 철저히 살펴보도록 했는데도 애리조나는 자기 주에서 제조 보유되고 있는 무기에는 연방정부의 규제를 면제하는 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과거 서부개척시대 이름을 날린 총잡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오케이(OK) 목장의 혈투'의 배경이었던 전통에서 보듯 총기 소지가 매우 자유로운 애리조나에서는 그간 총기 소지 규제법 제정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투산 대학교 근처 식당에서 일하는 라이얀 콜린스는 "총기 소지를 적극 지지한다"며 "8세 때 처음으로 내 총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모두 4정의 총을 갖고 있다는 그는 주 법을 지지한다면서 "이번 사건과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어떤 방안이 나오길 바라지만 그것은 그걸 원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총기 소유를 지지하는 애리조나 주민 가운데서도 애리조나의 총기관리는 허술한 정도가 지나치다며 우려하는 이들이 있다.

툼스톤에서 총기상을 운영하는 짐 뉴바우어씨는 애리조나에서는 면허 없이 무기를 몰래 소지하는 것까지 허가되는 판국이라면서 "누구나 주머니에 총을 넣고 돌아다닐 수 있다.

이들에게는 관련 법규를 숙지하고 언제 총을 사용해야 하며 언제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이 안일하게 대응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기퍼즈 의원이 건강보험개혁 법안에 찬성표를 던진 뒤 투산의 그의 사무실이 공격을 받았고 앞서 2009년에 투산에서 개최된 이 법안 관련 토론회장에서 총기가 발견돼 의원 측이 경찰에 신고한 적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티파티' 출신의 제시 켈리와 접전 끝에 승리를 거뒀을 때도 총기가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해병대 출신 켈리 후보는 선거 유세장에서 "가브리엘 기퍼즈를 공직에서 추방하는 데 도움을 달라"며 "제시 켈리로 장탄된 M16 자동소총으로 갈겨버려라"고 선동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 발생 뒤에도 티파티는 강경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500인 피마 티파티' 설립자 앨리슨 밀러는 한 인터뷰에서 이번 총기 난사를 비난했지만 티파티의 방침을 수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애리조나 주가 신이민법과 관련 거센 비판을 받은 지 1년 만에 사회 일탈자가 총기를 그렇듯 쉽게 구입할 수 있느냐는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모양새다.

피마 지역 보안관이자 기퍼즈 의원의 친구인 클래런스 듀프니크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맘에 안 드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라"며 "분노, 증오, 심한 편견이 말이 안 될 정도로 이 나라에서 횡행하고, 불행하게도 애리조나가 가장 심한 것 같다"고 개탄했다.

한편 폭스뉴스 인터넷판은 지난 2009년 토론회장 총기 발견 건과 관련, 기퍼즈 의원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그가 나중에 "`오케이 목장의 결투' 영화의 본고장인 이 지역 의원이라면 놀랄 일은 아니다"고 말한 사실을 소개했다.

폭스뉴스는 또 기퍼즈 의원이 지난 2000년 11월 반자동 무기 소지에는 반대했지만 총기 소유 권리에 관해서는 지지하는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기퍼즈 의원은 지난 2008년 9월에 낸 보도자료에서 "오랫동안 총기를 소지해 온 사람으로서" 당시 `글록' 권총을 갖고 있다고 밝혔으며 그 후에도 "미국은 총기 소유의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법을 준수하는 모든 주민이 그 전통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통적으로 총기소유에 우호적이었던 공화당 의원들 역시 이번 사건을 두고도 `문제는 총기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애리조나에 지역구를 둔 트렌트 프랭크스 하원의원은 미국의 총기소유법에 결함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비난의 대상은 총이 아니라 총을 쏜 러프너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총기소유의 자유는 "무기 소지는 국민의 권리로 침해받을 수 없다"고 명시한 1791년 수정헌법 2조의 원칙 아래 오랜 전통으로 유지돼 왔다.

각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이 원칙에 따라 총기소유 연령이나 구입에 필요한 사전 절차 등을 규정한 법을 저마다 제정, 시행하고 있다.

본디 수도 워싱턴 D.C가 수정헌법 2조에 명시된 무기소지권을 경찰과 보안군의 `집단적 무기소지권'으로만 해석, 1976년부터 개인의 총기 소지를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했으나 32년 후인 2008년 연방대법원은 워싱턴시의 관련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지난해 6월에는 연방정부는 물론 주정부와 지방정부도 개인의 총기 소지를 통제할 권한이 없다며 "총기 보유 금지 규정을 보다 완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1981년에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저격사건으로 존 브래디 당시 백악관 대변인이 하반신 불구가 되자 이를 계기로 총기규제 필요성이 대두, 1994년에는 총기구입 이유 명시와 전과조회를 의무화한 `브래디법'이 발효됐다.

그러나 같은 해 애리조나 지방법원은 이 법에 명시된 전과조회 의무화 조항이 수정헌법 10조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공교롭게도 당시 위헌 의견을 낸 판사 가운데 한 명은 이번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존 롤 연방지방판사였다.

이 결정은 1997년 대법원에 의해 유지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의 총기소유율은 세계 1위로, 전국에 퍼져 있는 전체 총기 수는 3억정에 달한다.

이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권총이며 1억정 가까이를 일반 대중이 소유하고 있다.

이런 여건 탓에 총기를 이용한 살인사건 사망자 비율도 10만명당 3.5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으며, 유럽이나 일본 등 여타 선진국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서울=연합뉴스) ciy@yna.co.krpuls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