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이민.유대 성향 단체 연관성 수사
기퍼즈 의원 용태 "희망적이나 경과 지켜봐야"

미국 애리조나 주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제러드 리 러프너(22)가 범행을 사전에 치밀히 계획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수사 결과 러프너는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40.민주)을 겨냥한 암살을 시사한 글을 남겼으며 범행 한 달여 전 권총을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사 당국은 또 러프너와 백인우월주의 및 반(反)이민 성향 단체의 연관성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 "암살, 사전계획" 낙서 등 발견 = 러프너를 기소한 미 연방검찰의 기록에 따르면 투산의 러프너 자택을 수색한 결과 한 금고 안에서 러프너의 서명과 함께 "나의 암살", "나는 사전에 계획했다", "기퍼즈"라고 휘갈겨 쓴 봉투가 발견됐다.

또 러프너가 기퍼즈 의원과 유권자 간 만남의 행사에 참석한 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는 내용의 2007년 8월 30일자 기퍼즈 의원 명의의 감사장도 함께 발견돼 러프너가 사건이 발생한 이번 행사와 같은 행사에 과거 참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은 이 밖에도 러프너가 총격에 사용한 9㎜ 글록 반자동 권총을 약 한 달여 전인 작년 11월 30일 인근에서 구입한 시실을 상점 영수증과 CCTV 영상 등을 통해 확인했다.

이에 따라 당국은 러프너가 사전에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한편 이번 총격사건 현장의 감시 카메라에 포착돼 한때 공범으로 추정됐던 남자는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당국은 밝혔다.

피마 카운티 경찰 관계자는 이 남자가 러프너를 사건 현장인 쇼핑센터 밖까지 태워줬던 택시 운전사였으며 "그와 이야기한 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러프너는 현재 묵비권을 행사하며 수사관들과 이야기하지 않고 있으며, 10일 중 피닉스 연방 치안판사 앞에 출석할 예정이다.

러프너의 변호인으로는 연쇄 폭탄테러범 '유나바머' 시어도어 카진스키(58), 9.11 테러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종신형을 받은 자카리아스 무사위 등 유명 피고인들을 도왔던 연방 국선변호사 주디 클라크가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 反이민.백인우월주의 집단과 연관성 조사 = 범행 동기와 관련해 수사 당국은 러프너와 백인 우월주의 및 반(反)이민 성향으로 알려진 단체의 연관 가능성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익명을 요구한 한 관리가 AP통신에 밝혔다.

당국은 백인 우월주의 단체 '신세기재단(New Century Foundation)'이 펴내는 잡지 '미국 르네상스(American Renaissance)'의 사이트를 살펴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러프너가 여러 차례 인터넷에 올린 글에는 신세기재단 등이 지지하는 반정부, 반유대주의적인 표현들이 포함돼 있다고 극단주의 조직 감시단체인 '남부빈곤법률센터(SPLC)'가 분석했다.

기퍼즈 의원은 유대인으로 최초의 애리조나주 유대계 하원의원이다.

신세기재단은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다양성에 대해 "분열을 초래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라며 반대하는 주장을 펴왔으나 이 단체는 이날 사이트에 "러프너라는 이름의 잡지 구독자나 컨퍼런스 참석 등록자가 없다"며 연관성을 부인했다.

◇ "범인 최근 심경 급변.. 정신적 문제 있어" = 러프너는 최근 수년 사이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겪었다고 피마 커뮤니티 칼리지를 러프너와 함께 다닌 친구 통 샨이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지난 2007년 러프너를 피마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만나 친해진 샨은 그 해 학년이 끝난 뒤 러프너와 연락이 끊겼다가 작년 여름에 다시 만났으나 사람이 크게 달라져 있었다고 말했다.

샨은 "무엇 때문에 그가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온라인으로) 얘기하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한 질문만 마구잡이로 했다"며 사고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범인이 그였다고 믿었다"고 털어놨다.

투산에서 초ㆍ중ㆍ고를 졸업한 러프너는 피마 커뮤니티 칼리지 재학 도중 교실과 도서관에서 말썽을 일으켜 5차례 교내 경찰과 언쟁을 벌인 끝에 작년 9월 교칙 위반으로 정학처분을 받았다.

피마 커뮤니티 칼리지의 한 동급생은 낙태와 관련된 한 수업 도중 러프너가 "테러리즘에 대해 얘기했고 유아를 살해하는 것에 대해서 웃으면서 얘기했다"며 "우리는 충격을 받아 그를 쳐다봤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기퍼즈 용태 "희망적이나 경과 지켜봐야" = 기퍼즈 의원은 여전히 중태이나 긍정적인 징후를 보이고 있다며 '조심스럽지만 희망적'이라고 치료를 맡고 있는 투산대 의료센터가 AP통신에 밝혔다.

기퍼즈 의원은 손을 꽉 잡아보라는 등의 간단한 지시에 대해 반응하고 있으며 이는 "뇌가 매우 고도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의료진은 말했다.

조사 결과 기퍼즈 의원의 왼쪽 뒤통수로 들어간 총탄은 손상시 치명적인 대뇌 가운데 부분을 피해 좌뇌를 관통, 왼쪽 이마를 뚫고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총알이 대뇌 가운데를 지나 좌뇌와 우뇌를 관통하는 경우 피해가 훨씬 크기 때문에 이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것.
그러나 같은 총격을 당해도 환자 개인마다 손상 정도가 크게 다른 뇌의 특성상 정확한 피해 정도 및 향후 장애 가능성 등을 가늠하려면 앞으로 수 주 이상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의료진은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j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