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유라시아의 허브 - 터키

급팽창하는 소비시장
젊은층 중심 車ㆍIT제품 불티 … 이스탄불 1년 새 백화점 5곳 개점

유라시아의 관문
법인세 인하ㆍ공기업 민영화 등 과감한 개혁으로 外資 유치
비행거리 4시간 내 56개국 위치 … 물류ㆍ생산 중심지 우뚝

유럽과 아시아대륙의 정가운데 자리잡은 터키는 1922년 오스만튀르크제국 멸망 이후 세계 무대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서유럽에서 시작된 산업화의 물결이 한국 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까지 전파될 때도 터키는 그 흐름에서 한발짝 비켜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떠오르는 이머징마켓으로 주목받고 있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은 최근 투자보고서에서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등 4개국을 영문 첫 글자로 조합한 'MIKT'로 지칭하며 "올해는 터키가 견조한 경제 성장으로 주목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잠든 사자는 그 자리에서 일어선다"

지난해 12월28일 이스탄불 포룸백화점 지하 1층에 있는 삼성전자 매장.갤럭시S,LED TV 등을 사려는 시민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노트북 가방을 멘 30대 후반의 한 남성은 매장 왼편 벽에 걸린 LED TV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고,히잡을 한 여성은 매장 중앙에 진열된 휴대폰들을 꼼꼼히 비교하고 있었다.

"어떤 제품이 잘 팔리느냐"고 묻자 매장 점원인 무스타 투한은 "모든 제품이 잘 팔린다"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는 "재미있는 사실을 한 가지 알려주겠다"며 "터키는 유럽 지역에서 전자제품이 가장 비싼 나라 중 하나지만 젊은 '얼리 어답터'들이 많아 가격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자동차 판매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진병진 현대자동차 터키법인 공장장은 "지난해 연간 60만대 판매를 목표로 했는데 실제로는 75만대 정도 팔렸다"고 밝혔다. 전병제 KOTRA 이스탄불센터장은 "2009년만 해도 다소 불안해 하던 터키 소비자들이 작년부터는 과감하게 지갑을 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소비가 급팽창하자 이스탄불에는 최근 1년 새 포룸 같은 고급 백화점이 5개나 문을 열었다. 이스탄불 리츠칼튼호텔에서 만난 베닷 악지레이 터키 자본시장위원장은 "터키 경제의 현재 상황을 압축적으로 묘사해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터키 속담에 '잠든 사자는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선다'는 말이 있다"며 다소 선(禪)문답 같은 답변을 내놨다. 빠른 경제성장세에 힘입어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서겠다는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과감한 경제개혁

터키는 이머징마켓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7583만명에 달하는 인구 덕분에 내수 시장이 크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35세 이하 젊은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65%나 된다는 점이 서유럽의 '늙은 국가'들과 대조적이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3개 대륙의 가운데 자리잡고 있어 생산 및 물류 중심지로서의 조건도 갖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10년 전만 해도 '유럽의 문제아' 취급을 받았다. 1990년대에 터키의 소비자물가는 매년 두 배 가까이 뛰었고,환율 또한 급등락을 반복했다.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터키를 외면했고,1990년대 터키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4%에 그쳤다.

그러나 최근 터키는 급격한 변신을 시도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이끄는 정의개발당(AKP)은 2003년 집권 이후 법인세 인하,화폐개혁,공기업 민영화 등 과감한 경제 개혁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02년부터 안정세에 접어들어 2004년에는 드디어 한 자릿수에 진입했고,환율 역시 하향 안정세를 유지했다.

거시경제가 안정되자 외국인 투자도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웨이스 토프락 터키투자청 이사는 "2004년 27억달러에 불과하던 외국인직접투자(FDI)가 2005년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어서기 시작해 2007년에는 220억달러로 불어났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터키는 2002년 이후 연평균 7%대의 고성장을 거듭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유럽 '생산기지'서 유라시아 '허브'로

터키는 값싼 노동력이 풍부한 '생산기지'와'유럽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했다. 그러나 중국 인도의 부상과 동유럽의 시장경제체제 전환 등으로 터키의 이런 매력은 퇴색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토프락 이사는 그러나 "이스탄불 공항에서 비행기로 4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국가는 총 56개국이며 이들 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을 모두 합치면 22조달러로 중국의 약 4배 규모"라며 "배후 시장과 내수 시장이 크다는 점이 기업들이 터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계인 대우인터내셔널 이스탄불지사장은 "포스코가 3억5000만달러를 들여 터키 이즈미트 지역에 스테인리스 냉연 공장을 건설키로 결정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터키 정부가 이슬람 및 아프리카 국가들과의 외교에 주력하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점도 중요한 변화"라며 "'메이드 인 터키'라는 라벨이 아랍과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는 데 큰 이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탄불(터키)=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