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향전 개창황금 10년(大步向前 開創黃金十年).'요즘 대만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에서 나눠주는 팸플릿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앞으로 10년 동안 황금시대를 열 큰 걸음'이라는 뜻이다. 중국과 대만 간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의 홍보 문구다. ECFA는 대만 전역을 관통하는 최대 화두다.

양국이 관세를 철폐하고 서비스 분야 개방을 골자로 하는 이 협정은 대만의 경제 역사상 가장 큰 변화를 이끌 동력으로 평가된다. 송익준 KOTRA 타이베이 무역관 차장은 "ECFA 발효를 계기로 교역과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외국 기업이 대만을 중국 시장 공략의 교두보로 이용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 협정은 지난 9월12일 발효됐지만 핵심 내용인 관세 인하 및 철폐는 새해부터 본격화된다. 대만 기업인들은 자신감에 차 있다.

ECFA를 계기로 경기가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되는 데다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동안 아킬레스건으로 여겨지던 '얼굴 없는 수출'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에서 벗어나 자사브랜드 구축에 온 힘을 쏟고 있다.

◆車 · 휴대폰 · 악기까지 자사브랜드화

대만 기업들은 전 세계 노트북 컴퓨터 생산의 8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HP나 델 도시바를 기억하고 있을 뿐 대만 업체 이름은 거의 모른다. OEM 수출이기 때문이다. 이 방식의 약점은 마진이 박하다는 것과 시장지배력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만에선 자동차 전자제품 악기 및 중소기업 제품에 이르기까지 자사브랜드 붐이 거세게 불고 있다.

대만 자동차 시장은 외국차가 지배하고 있다. 그 가운데 올초부터 '쿠비(영어 브랜드는 Tobe)'라는 차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1300cc의 앙증맞은 소형차다. 대만 최대 자동차기업인 위룽그룹과 중국 굴지의 민영자동차회사 지리자동차가 대만에서 합작 생산한 모델이다. 가격은 약 1500만원 수준.지난해 12월부터 베트남 필리핀 등지로 수출도 시작한 이 모델은 대만 · 중국 간 협력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하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대만은 자전거 강국이다. 2008년 540만대를 수출해 2007년보다 65만대나 더 수출했다. 총 수출액은 13억8800만달러에 이른다. 대만 최대 자전거업체인 자이언트 관계자는 "내년엔 전체 매출의 70%를 자사 브랜드 제품에서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업체 HTC는 '디자이어'와 '와일드 파이어',악기업체 롄창색소폰은 'LC' 브랜드를 앞세워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대만 정부,자사 브랜드 육성 적극 지원

대만은 중소기업형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린핑핀 대만중소기업협회 이사장은 "대만에는 2009년 기준으로 123만개 중소기업이 있다"며 "이들은 글로벌 기업과 거래해 오면서 높은 경쟁력을 구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OEM에 의존한다는 게 문제였다. 대만 정부는 자사 브랜드를 육성해야 부가가치가 높고 지속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 투자펀드 결성,인재 양성 등을 통해 브랜드를 육성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만 기업들의 브랜드 가치도 쑥쑥 올라가고 있다.

대만의 브랜드 제고 프로젝트인 '브랜딩 타이완' 주관기관에서 2009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브랜드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업체는 에이서(ACER),트렌드 마이크로(Trend Micro),ASUS,HTC 등 4개에 이른다. 인스턴트 라면업체인 캉스푸(Master Kong)는 9억달러,식품업체 완트완트(Want Want)나 타이어업체 맥시스(Maxxis),자전거업체 자이언트(Giant),전자제품 유통업체 시넥스(Synnex),네트워크 장비업체 직셀(ZyXEL) 등의 브랜드가치는 2억~4억달러에 이른다. 대만 업체들의 브랜드 전략은 한국보다 늦게 시작됐지만 글로벌 마인드와 품질 · 가격경쟁력 등이 맞물릴 경우 브랜드 가치가 급속도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타이베이=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