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들어 미국 민간 전문가들의 북한 방문이 숨 가쁘게 이어지고 있다.

초순(2∼6일)에는 미 국무부 대북특사을 지낸 잭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장이 북한에 다녀왔고, 9∼13에는 핵 전문가로 통하는 스탠퍼스대의 존 루이스 교수와 지그프리드 헤커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이 방묵했다.

북한은 새 경수로를 짓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영변 핵시설 주변을 프리처드 소장에게 공개하고, 헤커 박사에게도 경수로 건설을 시사하는 언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놓고, 중단 상태의 6자회담을 방치하면 핵개발 프로그램을 다시 진행할 수 있음을 우회적으로 미국 정부에 전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모튼 아브라모위츠 전 국무부 차관보 일행이 15일 평양에 들어가 시선을 끈다.

조선중앙통신은 단장 격인 아브라모위츠의 방문만 언급했지만, 이 방문단에는 리언 시걸(미 사회과학원 동북아안보협력프로그램 국장), 토니 남궁(뉴멕시코 주지사 보좌관), 조엘 위트(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연구원) 등이 포함돼 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16일 전했다.

대북 전문가들이 아브라모위츠 일행의 방북에 주목하는 이유는 북미 양국 정부 사이의 `비공식 메신저'일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 정가에서 `북한통'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작년 2월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전에도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입장을 미국의 새 행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입장과 실정을 비교적 잘 이해하는 미국의 민간 전문가들을 활용해 교착 상태에 빠진 대미 관계를 뚫어보려는 북한의 속내가 읽힌다는 것이다.

북한대학원대학교의 양무진 교수는 "미국과 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미국 민간 전문가들을 초청해 대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북한 외교의 통상적인 패턴"이라면서 "11월 들어 꼬리를 물고 있는 미국 전문가들의 방북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조성렬 책임연구원은 "김정은 후계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정치, 경제, 사회적 안정은 물론 외교적으로도 평화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면서 "미국 전문가들을 통해 6자회담을 빨리 재개하자는 입장을 미국 정부에 전달하려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전문가들의 방북이 집중된 시점도 그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중간선거(11.2), G20 정상회의(11.11∼12) 같은 주요 정치ㆍ외교일정이 마무리돼, 북한으로서는 천안함사건 이후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와 대미관계에서 어떤 변화를 모색할 타이밍이 됐다는 얘기다.

조성렬 책임연구원은 "한미 양국의 중요 정치.외교일정이 일단락돼, 본격적으로 북핵 문제에 대한 고민이 시작될 수도 있다"면서 "북한이 미국의 민간전문가들을 잇따라 초청하는 것이 이런 시의성과 맞물려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