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같은 미소로 무장한 펠로시와 대조

2일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로 차기 하원의장직을 예약해둔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울보'다.

의회 의원 가운데 그 만큼 감상적인 인물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게 동료들의 설명이다.

12명의 형제자매들로 북적이는 가난한 노동자의 집안에서 자라나 환경미화원, 술집 웨이터와 야간경비 등 궂은 일을 닥치는대로 해가며 겨우 학업을 마친 베이너는 자신의 젊은날을 회고할 때마다 눈물을 쏟아낸다.

의정활동중에는 교육분야의 법안을 놓고 옥신각신할 때 학생들의 어려운 처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보인 적도 한 두번이 아니다.

이런 베이너의 모습은 조금의 감정적 동요도 없이 강철같은 미소로 무장한 낸시 펠로시 현 하원의장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선거 패배로 인해 올해말을 끝으로 하원의장직을 내놓아야 하는 펠로시는 최근 한 방송사와 인터뷰 도중 "선거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이냐"는 질문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미소를 유지한 채 당내 최일선에서 후선으로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베이너가 가장 최근에 울음보를 터뜨린 것은 2일 밤 선거 개표가 진행되면서 공화당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선거운동본부에서 연설할 때였다.

당시 베이너는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다"면서 눈물을 쏟아냈다.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그는 불끈 쥔 주먹으로 입을 막고 고개를 흔들어보기도 했지만 한번 터진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 장면 이후 트위터 등에는 베이너의 눈물이 과연 진정성을 지닌 것인지, 아니면 정치적 제스처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나 베이너를 좀 아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울음이 결코 연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9일 AP통신에 따르면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교육장관을 지낸 마거릿 스펠링스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베이너는 아이들에 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항상 목이 메이곤 한다"고 밝혔다.

1990년 베이너와 함께 하원에 첫 등원했던 짐 너슬 전 의원은 AP와의 회견에서 "베이너는 의회내에서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중 한 명"이라면서 "동료의원이나 지역구 주민의 간단한 코멘트에도 감동을 받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베이너가 물러터진 유약한 인물은 아니다.

야당의 하원 원내대표로서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을 향해 섬뜩한 공격을 퍼붓고 수적 열세에 몰려 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 없을 때는 의사당 발언대에서 고함을 지르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눈에 띈다.

물론 이럴 때도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올해초 건강보험 개혁법안의 표결 처리를 앞두고 반대 연설을 할 때도 그의 목이 메였고 금융회사에 구제금융을 단행할 때도 울음섞인 목소리로 반대주장을 폈다.

그렇다면 베이너의 이러한 감상적인 면모가 앞으로 계속 플러스로 작용할 수 있을까.

중간선거 유세 기간에는 울음보를 터뜨린 경우가 없었고 선거 승리 직후 감정적으로 들뜬 상태에서 눈물을 보였기 때문에 별 탈이 없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베이너가 눈물을 쏟아낸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1972년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선두를 달리던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은 한 지역신문이 자신의 아내를 혹독하게 공격한 것 때문에 대중앞에서 눈물을 보였다가 한 순간에 지지율이 급락, 대권 도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1987년 공화당의 팻 슈로더 하원의원은 대선 출마를 포기하는 선언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이 눈물은 그후 몇년 동안 슈로더의 정치적 이미지에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아무 때고 눈물을 흘려대는 나약한 정치인에게 국가경영을 맡길 수 없다는 정서가 작용한 케이스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초반에 오바마 후보에게 일격을 당한 후 뉴햄프셔의 한 카페에서 "너무 힘들다"며 눈물을 흘렸다.

`힐러리의 눈물'은 즉각 강력한 효과를 발휘해 뉴햄프셔의 예비선거에서 오바마를 꺾는데 톡톡히 기여했다.

오바마는 2008년 대선 투표를 목전에 두고 어릴 적 자신을 직접 키운 외할머니의 부고를 접하고 대중연설 도중 눈물을 보였지만 나약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좋은 점수를 받았다.

베이너의 눈물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워싱턴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s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