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그들을 뭉치게 했다"..칠레-볼리비아 관계 진전도 기대
광업 구조개편 목소리 거세..강진 피해지역 재건도 과제

칠레 북부 산 호세 광산에서 연출된 한편의 기적같은 드라마가 칠레 국민을 또한번 하나로 똘똘 뭉치게 만들고 있다.

13일 세계 각국 언론은 69일만에 이뤄진 33명의 칠레 광부 구조작업 현장에 차려진 '희망 캠프'의 환호 분위기를 전하면서 "산 호세 드라마가 빈부격차 등으로 갈라져 있던 칠레를 단결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칠레는 지난 2월 말 발생한 강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전 세계적으로 역사상 5번째로 큰 규모였던 강진은 500여명의 사망자와 함께 300억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초래했다.

그러나 강진.쓰나미 피해 현장에서 수거한 흙 묻고 찢긴 국기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한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 훈련장에 나부끼면서 칠레 국민의 강인한 재건 의지를 알리는 상징이 됐다.

산 호세의 영웅들이 연출한 드라마에 칠레 국민은 또다시 끈끈한 단결력을 과시했다.

수도 산티아고의 한 주민은 광부들의 무사 생환을 바라는 염원을 담은 딸의 편지를 들고 200㎞를 달려 현장에 도착했다.

산티아고 시내에서 종이 꽃을 팔아 연명하는 한 여성은 산 호세를 찾아 광부 가족들에게 '희망의 종이 꽃'을 전달했다.

칠레의 광산 거부 중 한 명인 에두아르도 파르카스가 광부 1인당 1만달러씩을 제공하겠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기부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희망 캠프'에서 급식을 도와온 베르나르다 로르카는 "칠레는 매우 분열된 국가였다.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빈곤층은 갈수록 어려워졌다"면서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두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산 호세 광산 사고가 칠레와 볼리비아 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볼리비아는 1879년에 벌어진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뒤 120㎢에 달하는 영토와 400㎞ 길이의 태평양 연안을 상실하고 내륙국으로 전락했다.

볼리비아의 태평양 진출 노력을 둘러싼 오랜 갈등으로 양국은 1962년 이래 상호 대사관을 두지 않고 있으며, 1975~1978년 사이 대사관을 설치했다가 폐쇄했다.

2006년 중도좌파 성향의 미첼 바첼레트 전 칠레 대통령과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뤘으나 지난 3월 중도우파 성향의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이 취임한 뒤로는 협상에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칠레 정부가 33명의 광부 가운데 한 명인 볼리비아인 카를로스 마마니(23)를 우선적으로 구조하는 등 성의를 보이고, 모랄레스 대통령이 피녜라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하면서 두 정상이 정치성향의 차이를 뛰어넘어 다가설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한편 산 호세 광산 사고를 계기로 칠레의 주력 산업인 광업에 대한 구조개편 필요성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민간 광업회사들이 보유한 소규모 광산을 모두 폐쇄하거나 국유화하자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민간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칠레 정부로서는 소규모 광산을 폐쇄할 경우 대규모 실업 사태가 초래될 수 있고, 국유화 또는 민간 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는 재정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어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함께 강진.쓰나미로 집중적인 피해가 발생한 남부지역의 재건작업이 늦어지면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 점도 칠레 정부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코피아포<칠레>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