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런 멜처 美카네기멜론대 교수에게 듣는다

오바마 잇단 '反기업' 발언에 세율 불확실성까지 증폭
기업들 투자 대신 현금 깔고 앉게 만들어

美 디플레 가능성 없지만 소비 주도 경기회복은 어려워
투자·수출 확대 정책 시급
[리먼 파산 2년 특별 인터뷰] "美 경제회복 최고의 처방전은 '규제 모라토리엄' 선언하는 것"

미국에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15일(현지시간)로 만 2년이 됐다. 자산 6000억달러의 미 4위 투자은행이 파산 신청을 내면서 당시 월가는 대혼란에 빠졌다. 주택 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사들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신용위기는 독버섯처럼 전 세계로 확산됐다.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 연방정부와 통화당국이 전례 없는 조치를 동원해 급한 불을 껐다. 신용위기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났지만 아직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앨런 멜처(Allan Meltzer) 카네기멜론대 정치경제학 교수(82)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 실패가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지적한다. 각종 규제를 도입해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지나치게 단기적인 처방에 의존해 투자와 경제 성장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14일 피츠버그 대학 연구실에 있는 그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미국 경제가 풀어야 할 과제들을 들어봤다.

▼15일로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꼭 2년이 됐습니다. 국제사회의 금융개혁 노력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막을 것으로 보십니까.

"미 금융시스템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먼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시장개입에 너무 조심스러웠던 탓에 적절히 (거품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다음으로 정부의 주택 정책이 (주택 시장 거품을 조장하는 등) 문제를 야기시켰습니다. 마지막으로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금융사는 정부가 구한다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문제지요. 이 세 가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이번에 마련된 은행 자본 국제 규제안인 바젤Ⅲ는 은행의 자본력 확충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평가합니다. "

▼신용위기를 겪었던 월가 금융사들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유동성 위험을 뼈저리게 느끼고 위기에 대응해 유보금을 더 많이 쌓아놓는 등 많이 바뀌었지요. 위기를 겪은 후에는 금융사들이 신중히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

▼벤 버냉키 FRB 의장이 미국 경제를 살려냈다는 평가가 있는데 동의하십니까.

"정부의 정책 요구에 지나치게 순응적이었습니다. (아무리 위기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그는 통화당국의 독립성을 많이 포기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그의 공과를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

▼금융위기가 터진 뒤 미국인들은 쇼핑을 줄이는 대신 저축을 늘리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할까요.

"미국 경제는 수출 주도형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미국은 외국에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빚과 이자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출을 더 많이 하는 길뿐입니다. 오바마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잘못됐다고 비판하는 이유도 바로 부양책을 통해 소비를 진작시키려 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투자를 확대하고 수출을 늘려야 할 때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의회 비준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고선 지금까지 지키지 않았습니다. "

▼미국 경제의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일까요. 수요가 미약한 탓에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는데요.

"디플레이션에 대한 혼란이 있는 것 같아요. FRB가 설립된 1913년 이후 일곱 차례의 디플레이션이 있었습니다. 그 중 여섯 번은 경제가 정상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을 주지 않았어요. 유일하게 1929년부터 1933년까지의 디플레이션이 문제였는데요. 그 당시에는 상품 가격이 25% 곤두박질치고 유동성이 급격히 위축됐습니다. 그래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공포를 갖는 것이지요. 미국 경제가 다시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지요. (디플레이션 우려는) 채권 보유자들한테는 좋은 일인지 몰라도 미국 경제에는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채권을 쥐고 있는 투자자라면 디플레이션 우려를 증폭시켜 FRB로 하여금 국채와 증권 등을 사도록 하면 금리가 더 떨어지겠지요. 그럼 채권 값이 올라 자신들은 이익을 보지 않겠습니까. "

▼하지만 미국 경제 회복 강도가 미약한 만큼 시장에서는 FRB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가 있지 않습니까.

"미국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FRB가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현재로선 매우 제한적입니다. 연방기금 금리는 0% 수준이고 은행들이 맡긴 초과 지급준비금은 1조달러를 웃돌지요. 다시 말해 지금도 은행에 충분한 대출 여력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경제가 처한 문제는 통화적인 게 아니에요. 유동성 위기와는 무관합니다. 미국 경제는 잘못된 정책 탓에 빚어진 엄청난 불확실성 때문에 고전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아요. "

▼정부 정책이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고 보는 근거는 뭔지 궁금한데요.

"기업 하는 사람과 만나서 얘기해보세요. 기업인은 앞으로 세율이 얼마나 올라갈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탄소세 등이 도입되면 에너지 가격도 급등할 가능성이 큽니다. 현 정부에서 어떤 규제를 새로 만들어낼지 알 수 없다는 반응들이지요. 대통령의 반기업적 발언도 문제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 있게 투자할 수 있겠습니까. (투자하지 않고) 현금을 깔고 앉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지출을 줄이거나 세율을 높이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까. 답은 미국 경제의 미래에 달렸다고 봐야 합니다. 미국 경제를 어떻게 하면 회복시킬지에 대한 답을 먼저 찾는 게 중요하지요. "

▼그 답이 궁금한데요. 미국 경제가 경쟁력을 회복해 정상을 되찾기 위해 우선 해야 할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최상의 방책은 오바마 대통령이 '새로운 규제에 대한 모라토리엄(일시적 정지)'을 선언하는 것이지요. 더 이상 지출을 늘리지 않고 세금을 더 걷지 않겠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3년 혹은 5년 동안 그런 정책을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것이지요. 비상 사태를 제외하고는 결코 새로운 규제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것만큼 경제 주체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을 겁니다. "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경기부양책을 마련했습니다.

"경기부양책과 관련해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줄곧 소비를 진작시키는 쪽에 초점을 뒀지요. 하지만 그런 정책은 근시안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투자와 수출을 늘리는 쪽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한층 개선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최상의 정책은 규제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장기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상당수 미국인들이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을 잃고 있는데요.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금융위기가 터진 뒤 언론에서 자본주의와 자유시장이 죽었다는 기사를 많이 내보냈지요. 앞으로는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와 케인스주의(Keynesianism)로 돌아간다고들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사를 볼 수 없습니다. 그런 정책들이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인데요. 이런 과정을 통해 자유시장에 대한 믿음이 복원될 것입니다. 미국은 약간은 보수적인 나라입니다. 전통적으로 큰 정부를 선호하지 않지요. "

▼한국이 의장국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11월 서울에서 열립니다. 세계경제 발전을 위해 어떤 의제들이 더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각국 정상들이 만나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세계에 알리는 게 중요합니다. 한 걸음 물러나 역사적인 관점에서 봅시다. 지난 50~60년 동안 여러 국가에서 어느 때보다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습니다. 자유로운 무역이 없었다면 이렇게 놀랄 만한 성장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세계경제를 확장하는 유일한 방법인 자유무역을 막는 (보호주의) 정책을 고집하는 건 자국뿐 아니라 세계경제를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할 것입니다. "

▼한국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우수 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해 생산성을 높여왔다는 점에서 다른 어떤 나라보다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합니다. 카네기멜론대뿐 아니라 미국 대학 어디를 가도 한국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셈이지요. 한국 제품이 해외 시장에서 팔리는 이유는 그런 우수한 인재를 통해 제품의 가치를 높여온 결과입니다. 물론 자유무역의 혜택을 많이 누린 측면도 있지만 놀랄 만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


◆ 앨런 멜처 교수는 대표적 시장경제학자…통화정책 세계적 권위

통화정책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의 저서인 '연준의 역사(A History of the Federal Reserve)'는 중앙은행의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서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28년 보스턴에서 출생했다. 듀크대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친 뒤 1958년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이후 줄곧 카네기멜론대 테퍼경영대 교수로 재직해왔다. 케네디와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시장경제 주창자로 2008년 9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아메리칸인터내셔널그룹(AIG)을 구제할 때 강한 톤으로 비판했다.

그는 "실패 없는 자본주의는 죄가 없는 종교와 같다(Capitalism without failure is like religion without sin)"는 경구를 만든 인물로 알려져 있다. 탄소배출권(cap and trade) 시장 등 정부의 각종 규제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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