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끝) 민간소비
저축률 3년새 4%P '껑충', 몸 아파도 병원 가기 꺼려…백화점 신상품 나오자마자 할인
일부선 "조금씩 경기 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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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매클레인에 있는 타이슨스코너 쇼핑몰 내의 메이시스 백화점 앞 벤치.레널드 올트씨는 노동절 연휴를 이용해 쇼핑에 나선 부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소비자들도 정신 좀 차려야지.금융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나도 씀씀이를 20% 정도 줄였지."

무겁게 말문을 연 올트씨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미군과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각각 8년과 31년 근무했다. 은퇴한 후 버지니아 인근 메릴랜드주에서 살고 있다. "미국인들은 통상 소득의 40~45%를 주택담보대출금 상환에 쏟아부어.금융위기 전에는 높은 주택 시세를 믿고 흥청망청 소비해댔지.요즘은 집값이 폭락해 대부분 지갑을 열 엄두를 못 내."

올트씨 부부는 손자들에게 선물할 옷가지를 사러 왔다가 싸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어 결국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아부사민 만디 백화점 정장매장 직원은 "가을 신상품을 내놓자마자 15% 할인을 내걸었으나 손님들은 이래저래 재기만 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는 지리적으로 워싱턴 연방정부를 끼고 있어 전통적으로 경기침체 영향을 덜 탄다. 연방정부가 경기부양 대책과 자금을 집행하기 위해 공무원을 더 채용하고 인건비 지출을 늘리기 때문이다. 웬걸,이런 두 지역에서도 '덜 쓰고,더 저축해야 한다(spend less and save more)'는 분위기가 짙어졌다.

미국은 소비로 경제가 굴러가는 나라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소비 기여도가 70%에 달한다. 그러나 금융위기 후 위축 현상이 뚜렷해졌다. 위기 직전인 2007년 3분기 1.8%이던 저축률(가처분 소득 대비 개인저축 비율)은 지난 2분기 6.1%로 크게 높아졌다.

미국인들이 몸을 움츠리는 모습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집계한 결과 지난 7월 신용카드 대출잔액은 2008년 말에 비해 13%(1297억달러)나 줄었다. 카드업체들이 한도껏 대출을 끌어다 쓰도록 소비자들을 부추겨 거품경제를 야기시켰다면서 정부가 경고한 영향도 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오죽하면 "카드로 만든 집이 붕괴된 것"이라고 금융위기의 한 축을 비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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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슨스코너 쇼핑몰 내 여성 캐주얼의류 판매점인 '웨트 실'에서 2년째 근무 중인 디나 커티브양은 불만이 가득했다. "금융위기 전이라면 신용카드 가입이 별 문제 없었거든요. 지금은 강화된 규정 탓에 스무 살인 제가 카드를 만들고 싶어도 부모님이나 상사의 서명을 반드시 받아야 돼요. " 후유증도 컸지만 몇 년 전 한국 정부가 대대적인 신용카드 사용 권장으로 소비를 진작시켜 외환위기를 벗어난 기억이 새로웠다.

미국인들의 소비 패턴 역시 바뀌었다. 소비자분석단체인 PMA가 설문조사를 해보니 소비자 92%는 지난 2년 동안 소비 행태가 바뀌었다고 응답했다. 91%는 세일하지 않으면 제품 구매를 미루겠다고 했다. NCH 쿠폰팩트 리포트는 올 상반기 소비자들에게 제공된 쿠폰이 180억개로 지난해보다 11.4%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소비자들이 장바구니 쿠폰을 적극 사용해 절약한 금액은 20억달러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그런가 하면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은 지난 상반기에 병원 진찰과 약품 구입 등으로 지출한 각종 의료비가 전년 동기보다 1인당 2.7% 증가했다고 밝혔다. 1959년 관련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작은 증가폭으로 경기침체에 의료비까지 아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전제품이라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가전매장인 베스트바이의 티나 매리엇 타이슨스코너 점장은 "언론에서 자꾸 경기가 나빠진다고 보도하면 손님들 발걸음이 줄어든다"며 "영업 실적을 말해줄 수 없다"고 경계했다. "점포 앞 도로공사도 장기간 진행되고 있어 걱정스럽다"는 말로 대신했다.

매리엇 점장의 우려는 미 소비자들의 잿빛 경기 전망 및 소비심리와 맞닿아 있다. 기업자문업체인 앨릭스파트너스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소비자 중 63%는 2012년 말이나 그 이후까지 본격적인 경기 회복이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는 지난 연말 조사 때의 46%를 웃돈다. 또 소비자 83%는 앞으로 1년 동안 필수품 외의 제품 구입을 줄이거나 현상을 유지할 것 같다고 답했다.

물론 비관적인 미국인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쇼핑몰 레스토랑 코너에서 만난 스테이터 토드씨는 "4~5개월 전부터 경기가 살아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기에 개인적으로 지출을 많이 줄였지만 지갑을 더 열어볼 생각"이라고 했다. 포드자동차 판매직원인 마이크 굿씨도 "신차들이 조금씩 팔리고 있어 다행"이라면서 고객 서너 명을 맞이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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