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팽팽'…정부-세속주의 세력 갈등

터키에서 오는 12일 집권 정의개발당(AKP) 정부가 제안한 헌법개정안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가 실시된다.

사법부 변화를 골자로 하는 이번 개헌안은 지난 3월 정부가 초안을 공개한 이래 여야는 물론, 친(親) 이슬람 세력과 세속주의 세력 간 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터키에서 사법부는 군부와 더불어 국시인 '정교분리'를 신봉하는 세속주의 세력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진다.

이번 개헌안은 지난 2002년 총선을 통해 이슬람에 뿌리를 둔 정의개발당 정부가 출범한 이후 그동안 불거진 정부와 세속주의 세력 간 대립의 결정판에 가깝다.

이 개헌안은 헌법재판소, 최고법원, 판검사최고위원회(HSYK) 등 사법부 최상위 기구의 재판관 선출 또는 임명 방식을 바꾸고, 헌재에서 정당 해산을 판결하더라도 의회에 신설되는 정당해산검증위원회의 위원 3분의 2의 찬성이 있어야만 정당이 해산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군 간부를 군사법정이 아닌 일반법정에서 재판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모두 26개 항목을 담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는 개헌안은 1970년 쿠데타 직후 만들어진 헌법을 터키가 가입을 추구하는 유럽연합(EU) 헌법들과 더 일치하게 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반면 야당은 이번 개헌안을 정부가 사법부를 통제하려는 시도라고 비난하고 있고, 사법부도 권력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터키 헌재는 1997년 정의개발당의 전신인 복지당에 대해 해산 명령을 내림으로써 터키의 첫 이슬람 정부를 와해시킨 바 있다.

또 2008년에는 세속주의 세력이 제기한 정의개발당 해산 요청에 대한 헌재 판결에서 정의개발당은 해산 결정에 필요한 1표가 모자라 가까스로 파국을 면했었다.

아울러 터키 군부는 1960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쿠데타를 일으킨 뒤 권력을 민정에 이양한 바 있다.

터키 여론조사업체인 A&G가 지난달 20~28일 3천681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헌안에 대해 찬성 51%, 반대 49% 등으로 찬반이 팽팽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여론조사업체인 소나르가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1일까지 7천7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49.9%, 반대 50.1% 등으로 예측 불가한 상황인 것으로 나왔다.

이번 개헌안 승인 여부는 내년 7월 총선을 앞둔 집권 정의개발당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현지 언론들은 보고 있다.

한편, EU 집행위원회 안젤라 필로테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터키 정부의 사법부 재조직 시도에 대한 EU 집행위의 지지를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필로테 대변인은 "개헌 절차가 터키 정치권과 사회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협의 속에서 진행되지 않은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개헌 추진 절차에 대해선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부다페스트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ju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