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리비아가 한국 외교관의 간첩 활동 문제로 심각한 외교적 갈등을 빚고 있다. 외교관의 간첩 활동은 상대 국가와의 외교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인 만큼 올해로 수교 30주년을 맞은 양국 관계가 최대 위기에 처했다.

외교 소식통은 27일 "리비아에 있는 한국대사관 소속 정보안보 수집 담당 직원 1명이 스파이 혐의로 지난달 18일 추방됐다"며 "리비아 당국은 우리 대사관 직원의 통상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리비아 정부 요인에 대한 첩보 활동으로 보고 우리 정부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양국 간 외교관계가 파국으로 치닫자 리비아 현지에서 플랜트 공사 등을 진행 중인 국내 건설업계는 지난해 31억달러를 수주,네 번째 해외 건설시장으로 자리잡은 리비아 시장을 외국 업체에 잠식당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국내 건설업체가 리비아에서 시공 중인 프로젝트는 총 92억달러(11조원) 규모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리비아에 자동차 등 12억3500여만달러(아프리카 수출 대상국 중 이집트에 이어 2위)어치를 수출했다.

리비아 당국은 이 직원이 외교관 신분이라는 것을 감안,구속 수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최근 리비아 당국이 구모 선교사 등을 포함한 우리 국민 2명을 불법 선교 혐의로 체포하고,주한 리비아 경제협력사무소 직원 3명 모두를 본국으로 소환한 것은 우리 정부에 불만을 표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외교 관계자는 "리비아 직원들이 휴가를 맞아 본국으로 돌아간 것 같다"며 "리비아 당국과 오해를 풀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접촉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리비아 측의 반응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보당국의 실장급 임원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이 지난 20일 현지에 가서 리비아 정보당국과 1차 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현재 리비아 측으로부터의 연락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정부는 6일부터 13일까지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을 대통령 특사로 리비아에 파견,해명하려고 했지만 이 의원은 알-마흐무드 총리만 만나고 카다피 국가원수는 보지 못했다.

리비아 정부는 북한과 리비아 간 무기 거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비밀 정보수집 과정에서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 원수의 동향 등 정보활동도 포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교 관계자는 "이슬람 국가들은 미국 등 제3국 관계자가 자신들의 국가원수를 조사하는 행위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최악의 경우 국교 단절에 직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앗샤르클 아우사트 등 아랍 언론들은 최근 "리비아가 스파이 활동을 한 한국 외교관을 추방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한편 외교 당국자는 "이번 사건이 양국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고 있다"며 "우리 정부는 리비아 정부와 사태를 원만하게 풀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성호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