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신용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재정위기가 남유럽에서 동유럽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유럽 은행들의 투명성 부족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유럽 은행들이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빚더미'에 허덕이는 국가들에 조단위의 돈을 빌려줬는데 누가 얼마만큼 빌려줬는지 정확한 내역은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은행들 사이에서 불신이 가중되면서 은행 간 대출금리가 치솟는 신용경색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7일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2조6000억달러(약 3200조원)의 미스터리"라고 표현했다.

◆"누가 얼마나 빌려줬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에 따르면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3국의 정부와 민간이 해외에서 빌린 돈은 2조2000억유로(2조6000억달러)로 추정된다. 약 5670억유로는 정부부채,5340억유로는 민간 비금융사 부채,1조유로는 은행에 빌려준 돈이다. 스페인의 부채(1조5000억유로)가 그리스(3380억유로)보다 훨씬 많다. 금융위기의 진앙지는 그리스지만 스페인이 진짜 뇌관이란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문제는 이들 3국의 부채 가운데 절반 이상을 유럽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프랑스 은행들이 2290억유로로 이들 3국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가장 많고,독일(2260억유로)과 영국 및 네덜란드(각 1000억유로) 은행 순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같은 대략적인 추정치 외에 개별 은행들의 정보는 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돼 있다. 도이체방크 등 일부 대형 상장은행은 자신들이 보유한 남유럽 국가 채권 금액을 공개했지만 수백개의 소형 모기지은행,국영은행,저축은행들은 정확한 익스포저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독일과 스페인의 경우 이러한 중소 금융사들이 대출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같은 불투명성 때문에 은행들이 서로 믿지 못하면서 유럽 금융시장에선 신용위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주말 유리보(유럽 은행 간 차입금리)는 연 0.707%로 지난해 12월29일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ECB의 부실화까지 우려

'불신'에서 비롯된 자금조달 비용(금리) 상승은 2012년까지 8000억유로의 채무를 갚아야 하는 유럽 은행들에 큰 부담이다. 특히 유로존 정부들도 이 기간 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막대한 금액의 채권을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은행들의 자금조달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근 보고서에서 "은행들은 2012년까지 상당한 규모의 채권을 롤오버(만기연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스턴 브래스키 ING 이코노미스트는 "유로존 국가들은 그동안 돈을 빌려 은행에 구제금융을 주고,은행들은 그 돈으로 국채를 사들였다"며 "이처럼 여러 은행 계좌를 이용해서 당좌계정을 돌려 막는 식의 잘못된 관행으로 인해 재정위기가 심화될수록 은행들의 신용위기 가능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CB의 부실화도 우려되고 있다. ECB는 지난달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PIGS(포르투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국가의 국채 350억유로어치를 사들였다. 이들 국가가 내년 말까지 갚아야 할 국채가 1조유로에 이르기 때문에 재정위기가 해소되지 않으면 ECB의 채권 매입 규모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고유선 대우증권 거시경제팀장은 "전반적인 경제 상태가 개선되지 않으면 재정위기를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ECB의 국채 매입뿐"이라며 "유로존 정부의 재정위기가 ECB의 위기로 전이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완/김태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