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만 기름 유출 사태로 사면초가의 처지가 됐다. 지지자들까지 정부가 늑장 대응했다는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그가 공을 들이고 있는 기후변화 · 에너지 법안 처리에도 적지 않은 차질이 예상된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30일 ABC방송에 출연해 오바마 정부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2008년 대선 당시 공화당 출신이면서도 민주당 오바마 후보를 지지했던 그다. 파월은 "오바마 대통령은 며칠 전 이번 사고가 발생했을 때부터 상황을 점검 · 추적 · 관리해왔다고 말했으나 미국민들에게 그런 인상을 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종류의 위기 상황이 닥쳤다가 지나가는 것을 여러 차례 지켜본 뒤 얻은 교훈은 연방정부와 대통령이 가급적 빨리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위기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지 않을 경우 여론과 언론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고 충고했다.

지난 27일 오바마 대통령은 기름 유출 사고가 확산되자 이 지역에서 진행하던 33개의 석유 및 천연가스 시추 작업을 중단하고 신규 시추 탐사를 6개월 더 보류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른 석유 개발업체들의 반발도 예상외로 크다. 장기적으로 미국 내 석유 수급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멕시코만에서 시추 작업을 진행해온 업체는 엑슨모빌,셰브론,로열더치셸 등이다. 이 가운데 시추 중단 지시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셰브론 측은 발끈했다. "시추가 중단되고 신규 탐사가 보류되면 미국 경제와 해외 석유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 정부의 에너지 안보정책은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멕시코만은 미국에서 원유와 천연가스 시추량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도이체방크는 시추 중단에 따라 내년까지 멕시코만 전체 원유 시추량의 약 8%(하루 16만배럴)가 줄어들 것으로 추정했다.

현재 미 상원에 계류 중인 기후변화 · 에너지 법안에는 미 연안 석유 시추 허용 조항이 포함돼 있다. 공화당 의원들이 법안을 지지하도록 유도하는 전략적인 조항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 탓에 민주당 의원들 중 일부는 이 조항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사고업체인 영국의 BP는 심해 유정에서 뿜어 나오는 원유를 차단하는 새로운 대책을 조만간 적용키로 했다. 유정을 진흙 등으로 틀어막는 '톱 킬(top kill)' 방식이 실패하자 로봇 잠수정을 투입해 손상된 유출 파이프를 절단한 뒤 그 위에 뚜껑을 덮어 원유를 흡입하는 방식을 추진키로 했다.

케럴 브라우너 백악관 에너지 · 환경정책 담당관은 "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현재 진행 중인 작업이 모두 실패로 돌아갈 경우 인근의 감압유정 공사가 마무리되는 8월까지 유출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정부는 첫 번째 감압유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 2개의 감압유정을 굴착할 것을 BP에 지시한 상태다.

원유 유출 차단 작업이 두 번째로 실패하면서 BP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무려 30억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영국의 텔레그래프가 이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BP는 이미 사고 대응 비용으로 9억3000만달러를 사용했다. 앞으로 8주가량 추가 차단 작업과 피해 보상이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전체 지출액은 30억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추정이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