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골라의 수도 루안다에서 해변 도로를 따라 4시간가량 달려 나타난 숨베시 인근 농업 현대화 사업 현장의 첫인상은 '텅 빈 벌판'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오래도록 닿지 않아 잡초와 자갈만 무성했다. 현지 주민 조아킴 아르날두씨(35)는 "과거에는 일부 목화 재배가 이뤄지기도 했지만 오랜 전쟁과 주민들의 이주를 겪으며 불모지가 됐다"고 전했다.

이 불모지가 2012년 무렵에는 다시 거대한 목화 재배지로 탈바꿈한다. 인근 강에서 물을 끌어다 경기도 분당(1960㏊)의 2.5배 규모인 5000㏊ 땅에 흘려보내는 관개사업이 최근 완료됐기 때문이다.

◆텅 빈 불모지를 목화밭으로

숨베에 목화 재배지를 만드는 사업은 앙골라 정부가 한 것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공적개발원조(ODA)의 일환으로 한국수출입은행을 통해 앙골라에 경제개발협력기금(EDCF) 3140만달러(당시 환율 기준 331억원)를 저금리로 빌려줘 만든 것이다. 관개시설을 설계하고 시공하는 일은 삼성물산과 한일건설이 맡았다. 앙골라 정부는 2016년부터 30년간 해마다 16억원씩 차관을 갚을 예정이다.

앙골라 정부는 이 프로젝트가 큰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앙골라 농림부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아벨 발라 킨제카씨는 "전체 5000㏊ 중 3000㏊에 목화를 키울 계획"이라며 "1만명 정도의 일자리가 생기고 해마다 생산되는 목화 9000t으로 탈지면 등을 만들어 병원에서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직접 관개공사에 인부로 참여한 아르날두씨는 "목화를 재배해 돈을 벌면 가난하던 동네가 풍족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업현장 도로변에는 2~3층 규모의 철골 구조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유중식 한일건설 현장소장은 "목화 생산을 예상하고 앙골라인 투자자가 솜 타는 공장을 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농경지 개발이 자연스레 제조업 투자로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마사이족 고치는 한국인 의사

아프리카 곳곳에서 '코리아'를 알리는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정부의 각종 원조사업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렵다. 숨베 농업 현대화 사업과 같은 원조사업은 한국 기업들이 현지인들과 관계를 맺는 연결 고리가 돼 준다.

ODA 중점 지원국으로 검토되고 있는 DR콩고에는 올해 340만달러,내년에 700만달러의 무상원조가 이뤄진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이미 정부 부처 간 유선통신망을 구축해주고 있으며 최근 수도 킨샤사 인근의 추엔게 마을에서 주민참여형 농업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조혜성 KOICA DR콩고 사무소장은 "홍수 대비용 제방 건설을 비롯해 마을회관,학교,보건소 신축 등의 프로젝트가 4년간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카지티 추엔게 농업센터소장은 "마을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을 맞춤형으로 지원해주고 있어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고 했다.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에서도 한국 정부가 EDCF를 통해 정보통신기술(ICT) 직업훈련원 등을 건립하고 있다.

개인 봉사자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킬리만자로 산의 남쪽,탄자니아 북부지방에 있는 아루샤에서 의사로 일하는 '닥터 리' 이재헌씨(33)가 좋은 예다. 그는 KOICA 소속 협력의사로 작년 7월부터 탄자니아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그가 있는 마운트 메루 병원은 정부 지원을 받는 공공 의료기관이지만 시설은 그야말로 '야전병원' 수준이다. 열악한 시설 속에서 '닥터 리'를 찾는 마사이족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이씨는 한 시간에 수십명의 환자를 찾아다니며 스와힐리어로 예후를 묻는다. 처음엔 영어밖에 못했지만 지금은 어지간한 의사소통은 다 된다. 이씨에 대한 현지인들의 신뢰는 깊다. 현지 의사들보다 실력도 좋거니와 환자들을 정성스럽게 돌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곳곳에는 이씨와 같은 국제협력단원 370명이 '민간 외교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현지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나름의 네트워크를 갖춘 이들은 국가적 자원이기도 하다.

◆비즈니스의 첫 단추,ODA

아프리카의 자원과 시장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면서 각국의 아프리카 ODA 금액은 갈수록 늘고 있다. 2008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국가의 지원액만 273억달러에 이른다. 세계 각국에서 워낙 많은 돈을 아프리카에 지원하다보니 'ODA 쇼핑'이 이뤄질 정도다. 아프리카 정부들이 원조금액과 조건을 비교해서 마음에 드는 돈만 골라 받는다는 뜻이다.

한국의 ODA 규모는 아직 '명함도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다. 작년 한 해 아프리카에 지원한 금액은 1억800만달러에 불과하다. 숨베 농업 현대화 현장과 같은 유상원조 비중이 30%,KOICA를 통한 무상원조 비중이 70%가량이다.

돈의 열세를 뒤집을 방법은 없을까. 아프리카 현지의 한국인들은 "무작정 원조액을 늘리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원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재영 주(駐)앙골라 대사는 "아프리카 국가들은 중국이나 미국 일본 인도 등 특정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휘둘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그들이 'ODA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수 있도록 한국이 돕겠다고 하면 대부분 성과가 좋다"고 말했다.

숨베(앙골라) · 아루샤(탄자니아)=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