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두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역사 도시 교토다. 천년 고도 교토에는 사찰과 신사만 2000개가 넘는다. 시내 중심가 빌딩 숲 곳곳에도 사찰과 신사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찾아오는 관광객만 연간 5000만명이 넘는다. 일본 제1의 관광도시다.

또 다른 얼굴은 산업 도시 교토다. 교토는 교세라 닌텐도 일본전산 옴론 등 세계적 기업들의 본거지다. 일본에서 항구도시를 제외하면 산업생산액이 도요타자동차 공장이 있는 도요타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도요타시는 자동차 생산이 90%를 차지하지만 교토는 전기제품 정밀기계 섬유화학 식음료 등으로 산업구조도 고르다.

역사 도시와 산업 도시, 교토엔 이 두 가지가 공존한다.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런 조합이 어떻게 가능할까. 그런 환경은 세계적 교토 기업 탄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교토식 경영'은 기업의 경쟁력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교토 기업에 대한 취재를 마무리하면서 다테이시 요시오 교토상공회의소 회장(70)을 인터뷰했다. 옴론의 회장이기도 한 그는 2007년부터 교토상의 회장을 맡고 있다.

▼교토 기업의 특징을 자평해달라.

"먼저 교토라는 도시의 특성을 말해주고 싶다. 교토는 12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다. 역사 문화 종교 등 일본의 정신적 중심이다. 이런 역사 문화와 연결된 과거 사람들의 지혜가 남아 있는 도시다. 윤택한 문화와 장인의 기술이 그것이다. 이것이 여러 '모노즈쿠리'(최고의 물건을 만드는 것)의 바탕이 됐다. "

▼역사 도시라는 이미지와 함께 산업과 과학기술이 공존한다는 데 놀랐다.

"그게 가능한 건 교토가 학문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교토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대학과 연구기관이 집중돼 있다. 산 · 학 · 연 협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 유리하다. 교토대에서만 7명의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

▼그런 인프라가 교토 기업의 밑거름이 된 것 같다.

"물론이다. 선인들의 지혜와 산 · 학 · 연 등 사회적 인프라가 기업 이노베이션(혁신)의 밑바탕이 됐다. 전통 기술 기반과 장인 정신이 세계적으로 독창적인 제품을 만들어 냈다. 또 교토는 도시 규모가 크지 않아 고객과의 거리가 가까웠다. 교토 기업들은 이런 지역 특성을 잘 활용해 발전한 것이다. "

▼교토 기업은 다른 일본 기업에 비해 글로벌화가 빨랐다. 어떤 배경인가.

"교토는 시장으로서는 그리 크지 않다. 시장은 도쿄가 크다. 그러나 도쿄는 기존 기업이 시장을 이미 장악하고 있었다. 교토에서 개발한 상품을 해외에 팔지 않으면 안 됐다. 특히 교토에는 전자부품 제조업체가 많다. 규모의 경제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덩치를 키워야 했다. 이를 위해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것은 필연이었다. 다른 지역의 기업은 성장하면서 본사를 도쿄로 옮겼다. 하지만 교토 기업은 교토에서 세계로 진출한다는 정신을 지켜왔다. "

▼기업은 사업다각화를 통해 규모를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교토 기업은 왜 사업 다각화를 하지 않나.

"자동차 부품회사인 덴소가 자동차를 만들려면 바로 만들 수 있다는 얘기가 있다. 할 수 있다는 것과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핵심 역량과 수익력을 생각해야 한다. 사업다각화를 할까, 아니면 한 사업으로 글로벌화해 시장을 확대할까는 선택의 문제다. 교토 기업은 핵심 역량을 세계 시장으로 확대한다는 걸 선택했다. "

▼교토 기업은 유독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교토가 갖고 있는 종교적 특성도 작용했다고 본다. 불교라는 종교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됐다. '기업은 사회와 인간에 기여하기 위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게 교토 기업의 기본 생각이다. 불교의 '자비사상'과 연관돼 있다. "

▼기업 규모가 커져서도 벤처정신을 유지하는 교토 기업을 많이 봤다. 비결이 뭔가.

"교토는 1000년간 일본의 수도였다. 옛날엔 큰 시장이었다. 일본의 사람과 돈 물건 문화 등이 집중됐다. 그래서 교토인은 상품을 보는 눈이 높다. 생활용품조차도 최고의 물건을 갖고 싶다는 니즈가 강했다. 그걸 만족시키려면 다른 사람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한발 앞서 개발해야 한다. 이런 정신이 전승돼 왔다. 지금으로 말하면 벤처 마인드다. "

▼교토 기업은 이익률도 높더라.

"새로운 기술 제품을 개발하면 경쟁 없이 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 이익도 많이 낼 수 있다. 선점자 이익이다. 그 이익을 다음 단계의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이걸 반복해 왔다. 교토 기업은 이런 고부가가치형 경영을 해왔다. 이게 '교토식 경영'의 가장 큰 특징이다. 경쟁자가 많으면 이익률이 떨어진다. 고부가가치 경영이 안 된다. "

▼회사 조직을 쪼개 독립채산제를 해온 '분권 경영'도 이익률을 높이는 요인 아닌가.

"물론이다. 옴론의 경우 창업 이후 분권 경영을 해왔다. 미국의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 교수가 말한 '분권화'와 '집권화'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경영을 실천해왔다. 이게 사원들의 도전정신을 키우고 이익 마인드도 높였다. "

▼교토 기업은 오너 경영도 특징이다. 사업 성과와 오너 경영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나.

"창업자나 창업가 후손에 의한 경영은 빠른 의사결정과 리스크(위험) 감수를 가능하게 한다. 지역별 시장 니즈에 맞춘 스피드 경영이 가능했다. 글로벌 경영이 될수록 속도 경쟁이다. "

▼그런 점에서 삼성 등 한국 기업과 닮은 것 같다.

"맞다. 소니나 파나소닉 같은 일본 가전회사들은 주기적으로 최고경영자(CEO)를 바꾼다. 그럼 회사는 방향성이 흔들릴 수 있다. "

▼교토 기업의 오너 경영자 친목 모임인 '쇼와카이(正和會)'를 소개해 달라.

"다이쇼(大正)와 쇼와(昭和)시대에 태어난 교토의 오너 경영자 모임이란 뜻에서 그런 이름을 지었다. 30년 전부터 20여명의 멤버가 매달 한 번씩 모였다. 경영학 교수 등 전문가를 불러서 1시간 정도 강의 듣고,저녁 식사를 같이한다. 거기서 다양한 정보를 교환하는데, 서로 경쟁심도 생긴다. 개성적인 오너가 많아서 서로 자극이 된다. "

▼교토 기업에 앞으로 과제가 있다면.

"새로운 벤처기업의 창업 활성화다. 과거 10년 통계를 보면 교토의 기업 폐업률이 창업률을 웃돈다. 벤처기업 창업이 줄었기 때문이다. 고민이 많다. 정부도 은행도 정책과 자금면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지만,아무래도 기존 기업 지원이 중심이다. 산업구조 전환을 위해선 새로운 기업이 계속 생겨야 한다. "

▼교토는 산 · 학 · 연의 중심인 교토대학도 있고, 벤처 창업 환경이 좋은 편 아닌가.

"인프라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기업을 하고 싶다는 젊은이가 줄었다. 세상이 살기 좋아졌는지,외아들 외동딸이 늘면서 젊은이들의 도전심도 없어졌다. 나는 7형제였다. 어려서부터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됐다. 지금은 기업하겠다는 젊은이를 찾는 게 가장 어렵다. "

▼교토상의 차원에선 어떤 노력을 하나.

"교토상의도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학생 벤처를 육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초기 단계부터 지원한다. 자금 지원도 연결해 준다. 그러나 벤처를 창업하겠다는 학생이 적다. 내가 교토상의 회장이 돼 새로운 비전을 발표했다. 지식산업의 부활이다. 기존 기업도 지식산업으로 전환시키고,벤처기업도 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었다. "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과 한국 경제가 최근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 기업은 교토 기업과 닮은 점이 많다. 한국 기업은 수출의존도가 높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해 왔다. 그러나 본래 기업은 고용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다. 고용을 창출하려면 내수경제를 키워야 한다. 내수시장을 키우는 건 기업만의 책임은 아니다. 정부의 책임이기도 하다. 일본의 민주당 정부도 내수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한국도 고용을 늘리려면 내수경제를 키워야 한다. 내수 활성화의 모델 도시를 만들어 넓히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한국은 대기업은 강하지만 중소기업이 취약하다. 특히 부품 소재 산업이 약한데.

"옴론도 한국에 전자부품을 많이 수출하고 있다. 한국 기업은 우리의 큰 고객이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받으면 복잡한 심경이다. (웃음) 자동차 반도체 가전 등 모두 산업의 부품을 일본은 거의 전부 자체 조달할 수 있다. 그러나 가격면에서 부품의 국제경쟁력이 중국 인도 등 신흥국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부품이든 소재든 가격으로는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 품질과 기술 지혜로 승부해야 한다. 교토 기업은 과거부터 비용보다 품질로 승부해왔다. 한국 중소기업도 비용으로 경쟁할 게 아니라, 품질과 기술로 승부해야 한다. 교토 기업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교토=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