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여행제한' 한 단계 올려
닷새째 계속된 태국 정부와 시위대(레드셔츠) 간 충돌로 방콕 라차프라송 거리가 피로 물들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지난 13일부터 시작된 충돌로 37명이 숨졌고 부상자는 266명에 이른다. 시위대는 17일 사제 로켓과 수류탄까지 쏘며 격렬히 저항했고,정부군은 실탄발사 구역을 추가 지정하는 등 봉쇄를 확대하고 있어 방콕 도심은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우리 외교통상부는 이날 시위지역인 라차프라송 일대에 대한 여행경보를 기존 2단계(여행 자제)에서 3단계(여행 제한)로 상향 조정했으며 "방콕 여행을 신중히 재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화를 거부하는 정부

양측 간 타협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시위대는 17일 "정부군이 발포를 중지하고 철수한다면 유엔 중재하에 정부와 협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그러나 "발포는 '민간인'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를 대상으로만 이뤄진다"며 사실상 대화를 거부했다. 지난 13일 총격을 받아 혼수상태에 빠졌던 시위대 지도자 카티야 사와스디폰 전 특전사령관은 이날 숨졌다.

최근 유혈 충돌은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가 시위대에 제안했던 11월 조기 총선 실시 등의 타협안을 '시위대가 자진 해산을 않고 있다'는 이유로 철회하면서 벌어졌다. 내심 조기 총선 실시가 탐탁지 않았던 현 정부가 자진 해산을 하지 않는다는 빌미로 강제 해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는 만약 조기 총선이 치러진다면 현 정부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에게 정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탁신 전 총리는 재임 기간 농가 부채를 줄이고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을 늘려 이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

정부가 방콕과 인근 지역뿐 아니라 동북부 지방 20곳에 비상사태를 확산 선포한 것도 이 때문으로 추정된다. 동북부 지역은 대부분 농촌 지역으로 탁신 전 총리에 대한 지지가 강한 지역이다.

◆역풍 우려한 탁신 왕실비판 자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장본인인 탁신 전 총리는 16일 "정부가 실탄을 쏘는 행위는 태국 민주주의와 헌법에 대한 모욕"이라며 "양측은 하루빨리 유엔 중재하에 진정한 대화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탁신 전 총리는 지난 3월 시위대가 거리로 나선 이후 줄곧 배후에서 시위대를 조종한다는 의혹을 받아왔지만 표면적으로는 정치적 해결을 촉구하며 거리를 둔 채 사태를 관망해왔다. 2008년 해외로 도피한 그의 정확한 거처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탁신 전 총리가 이같이 시위대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건 시위대가 탁신이라는 개인을 위해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인식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시위대 일부에서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을 비롯한 왕실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도 그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 이유다. 아직까지 태국 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왕실에 대해 비판했다가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군부 쿠데타 때 '왕실이 쿠데타 배후에 있다'고 했다가 불경죄로 쫓겨나야 했던 경험이 있다. 그가 좀체 나서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