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26일(현지시간) 금융감독개혁 법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하기 위한 표결을 실시했으나 불발됐다. 야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한 데다 여당인 민주당에서 이탈 표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다시 절충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오바마 정부의 개혁 법안이 물건너갔다기보다는 일시적으로 지연됐다는 분석이 많다.

이날 표결에선 찬성 57표,반대 41표,기권 2표가 나왔다. 상정에 필요한 찬성 60표에 3표가 모자랐다. 공화당 의원 두 명이 기권한 가운데 민주당에서 벤 넬슨 의원과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가 반대했다. 넬슨 의원은 파생상품 규제안에 불만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드 원내대표는 당초 찬성했다가 반대로 돌아섰다. 상원 규정상 반대표를 던진 다수당 의원만이 법안을 재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면서 "당의 이익보다 국가의 이익을 앞세우라"고 상원을 압박했다. 그는 "금융권 로비스트들이 개혁법안을 완화하거나 아예 폐기할 수 있는 밀실로 논의를 가져가기 위해 일부 의원들이 상정을 지연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맹비난했다.

상정이 불발되면서 양당은 다시 협상하고 절충안을 마련해야 한다. 상원 법안은 △금융시스템 안정을 해칠 수 있는 대형 부실 금융사를 질서 있게 정리하는 권한을 행정부에 주며 △이를 위해 금융권에서 500억달러의 정리기금을 조성하고 △주택담보대출,신용카드 대출 등에서 금융사들의 횡포를 막는 소비자금융보호국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안에 두는 방안을 담았다.

법안은 또 △파생금융상품을 거래소와 청산소에서 거래 및 청산토록 해 투명성을 높이며 △예금을 받는 상업은행들이 파생상품 스와프거래 업무 부문을 분리토록 하고 △주주들이 금융사 이사 선출과 임원 보수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수체계를 개선하는 안도 포함하고 있다. 금융사들의 무분별한 덩치 키우기와 업무 범위를 제한하는 '볼커 룰(Volcker Rule)'도 반영돼 있다.

이 중 쟁점은 부실 금융사 정리기금과 파생상품 규제 안이다. 공화당은 정리기금을 조성하면 부실 금융사의 채권단과 주주가 의무적으로 손실을 떠안지 않고 다시 구제금융을 받게 된다며 반대한다. 정부에 정리 권한을 주면 시장 간섭이 커진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여기에다 지나친 파생상품 시장 규제는 관련 시장과 자금조달 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금융개혁 법안 처리가 비관적이진 않다. 월가는 이미 금융위기 진앙지로 공분을 사고 있다. 월가 개혁에 끝까지 반대하다가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공화당도 잘 인식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공화당의 반대가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WP와 ABC방송이 여론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66%가 월가 개혁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공화당 지도부도 톤을 완화했다.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대대표는 "우리 모두는 월가의 나사를 조일 수 있는 개혁을 내놓길 원한다"며 "다만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이 독자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없진 않으나 양당이 이번 주말까지 절충안을 만들어 재상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절충안에 따라 공화당에서는 5~6명이 찬성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WP는 관측했다.

한편 골드만삭스가 모기지 시장이 폭락하는 과정에서 단일 거래가 아니라 여러 가지 복합 거래를 통해 이익을 챙겼으며 이로 인해 새로운 혐의로 제소될 위기에 처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이날 보도했다. 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산하 상설조사위의 칼 레빈 위원장(민주당)은 골드만삭스의 '허드슨 메자닌' 등 부채담보부증권(CDO)을 이용한 5가지 새 부당거래 의혹을 제시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 경영진은 27일 상원 상설조사위 청문회에 출석, "정보를 은폐하거나 고객을 오도한 적이 없다"며 혐의를 강력 부인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