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사기혐의로 제소당한 골드만삭스의 파브리스 투르 부사장(31)이 로이드 블랭크페인 최고경영자(CEO)와 나란히 다음 주 미 상원의 청문회에 선다. 또 데이비드 비니아르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크레이그 브러더릭 최고위험관리책임자도 함께 증언할 예정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통신 등 미국의 언론들은 복수의 취재원을 인용해 투르 부사장이 오는 27일 상원 국토안보위원회 산하 상설조사소위에 출석해 이번 사기혐의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22일 보도했다.

당초 이 청문회는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 때 골드만삭스의 역할을 조사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블랭크페인 CEO만 출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SEC로부터 제소당한 후 투르 부사장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청문회에 출석하기로 했다. 그는 현재 무기한 유급 휴가 상태다.

SEC가 법원에 제출한 소장에 따르면 투르 부사장은 모기지 증권을 기반으로 한 부채담보부증권(CDO) 상품의 설계 단계에서 헤지펀드 폴슨앤드컴퍼니가 포트폴리오 구성에 직접 관여토록 했으며,폴슨이 CDO의 가치 하락 때 이익을 챙기는 쪽으로 투자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다른 투자자들에게 알리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SEC는 투르 부사장이 2007년 폴슨앤드컴퍼니의 의뢰를 받아 '애버커스(Abacus)'로 알려진 CDO를 발행하기 직전 동료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전체 빌딩(모기지 시장)이 조만간 무너지려 하고 있다"고 말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통상 비즈니스와 관련,밖으로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려온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진이 의회 청문회에 적극 나와 발언하려는 것은 법정공방을 앞두고 자신들은 CDO 트레이딩과 관련,아무것도 감춘 게 없다는 점을 고객들에게 알리려는 취지로 보인다. SEC로부터 제소된 후 골드만삭스는 회사 명예를 지키기 위해 가능한 수단을 모두 동원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골드만삭스의 그레그 팜 법률자문위원은 최근 "투르 부사장은 폴슨앤드컴퍼니가 매도 포지션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투자자들에게 내비친 것으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SEC가 골드만삭스를 사기혐의로 제소한 사안에 대해 의원들의 질문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법정공방을 앞두고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진이 정치인들로 구성된 패널 앞에서 공공연히 자신들의 주장을 펴는 데 따르는 위험이 작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벤자민 브라프만 변호사는 "금융계에 대한 여론이 최악인 상황에서 의원들이 골드만삭스 증언자들을 몰아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기록되는 만큼 법정공방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골드만삭스는 SEC 제소 영향으로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사업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WSJ 보도에 따르면 영국과 독일 등에서는 야당이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나 국채 발행 등 각종 금융 관련 거래에서 골드만삭스를 배제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에서는 골드만삭스가 재무부 보유 씨티그룹 지분의 매각 주관사 선정에서 밀려나는 등 영업 차질이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뉴욕=이익원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