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성 성당 지하실에서 영면..주요국 정상 조문포기
러.獨 대통령 등은 참석..러 "양국 가까워지기 바란다"


지난주 러시아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서거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가 18일 폴란드와 전 세계의 애도 속에 남부 고도(古都) 크라쿠프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바르샤바에 안치돼 있던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의 시신이 이날 오전 10시 크라쿠프의 성 마리아 성당에 도착하면서 시작된 이날 장례식은 유족과 폴란드 주요 인사, 전 세계 80여 개국의 조문단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오후 2시에는 바티칸 교황청의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이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의 영령을 위로하는 영결미사를 집전했다.

흰색과 빨간색인 폴란드 국기로 덮인 카친스키 대통령의 관과 흰색 바탕에 빨간색 무늬를 한 영부인 마리아 여사의 관은 영결미사가 끝난 뒤 1㎞ 남짓한 그로치카 거리를 지나 바벨 성의 성당으로 운구됐다.

이어 대통령의 딸 마리아, 쌍둥이 형인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법과정의당(PiS) 당수 등 유족과 지인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입관식을 진행, 대통령 부부의 유해가 든 관이 성당의 지하실에 안치됐다.

이 지하묘소는 과거 폴란드 왕국의 국왕들과 폴란드 독립운동의 아버지 요제프 필수드스키 등 국가 영웅들이 안치된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다.

입관식 직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호르스트 쾰러 독일 대통령, 안드루스 안십 에스토니아 총리,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 이반 가스파로비치 슬로바키아 대통령, 다닐로 투르크 슬로베니아 대통령, 트라이안 바세스쿠 루마니아 대통령, 쇼욤 라슬로 헝가리 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를 비롯한 전 세계 80여개국 조문사절단이 바벨성 정원에서 유족과 폴란드 정부에 조의를 표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이날 화산재 구름의 위험을 뚫고 쌍발형 프로펠러기를 이용해 크라쿠프에 도착해 폴란드와의 화해, 협력 의지를 과시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장례식을 마친 후 출국에 앞서 폴란드 국영 방송 TVP에 " 양국이 더욱 가까워져 상대의 얘기를 더욱 경청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러시아는 진지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극은 감당하기 힘든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때때로 사람들을 가깝게 만든다"면서 "양국 국민에게 이 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쾰러 대통령이 이끄는 독일 조문사절단은 헬기를 이용해 장례식에 참석했고 주변국 지도자들도 자동차, 철도, 헬기 등을 타고 폴란드를 방문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화산재로 폴란드의 전 공항이 폐쇄되면서 상당수 주요국 정상들이 불가피하게 참석하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영국 찰스 왕세자, 스웨덴의 칼 구스타프 16세 국왕,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 압둘라 귤 터키 대통령,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등 각국 지도자들은 폴란드 측에 장례식에 참석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했다.

우리나라는 정운찬 국무총리 대신 이준재 주폴란드 대사가 조문사절단장으로 유족과 폴란드 정부를 위로했다.

이날 폴란드 국민들은 대통령 부부의 관이 오전 7시 바르샤바의 성 요한 성당에서 운구되기 시작할 때부터 영구차와 장례행렬이 지나가는 곳곳에 나와 기도를 올렸다.

영결미사가 진행된 성 마리아 성당 주변과 바벨 성, 그리고 장례행렬이 지나간 그로치카 거리 1㎞ 구간 주변에는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기 위해 찾아온 추모 인파가 몰렸다.

경찰 당국이 크라쿠프 주민 1만명에 한해서만 성 마리아 성당과 바벨성이 있는 구(舊)도심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을 발급해 많은 추모객은 시내 곳곳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 앞에 모여 장례식 TV 생중계를 보면서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

현지 경찰은 최대 30만명의 인파가 대형 TV 스크린을 통해 장례식 장면을 지켜봤다고 전했다.

특히 바벨성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꽃과 양초를 내려놓고 카친스키 부부의 명복을 빌어 바르샤바에서 연출됐던 '촛불의 바다'가 재연됐고 꽃과 촛불 사이에는 이번 사고 희생자들의 사진도 눈에 띄었다.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를 비롯해 폴란드 고위 인사 96명을 태운 폴란드 정부 전용기는 지난 10일 '카틴 숲 학살사건' 7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던 중 모스크바 서부 스몰렌스크 공항 활주로 부근에서 추락,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크라쿠프<폴란드>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ju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