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시신 도착..시내 전체에 애도 물결
깊은 침묵의 도시.."이렇게 비통한 분위기는 처음"

러시아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의 시신이 도착한 11일 수도 바르샤바는 깊은 슬픔과 침묵에 잠겨 있다고 현지 주민들이 전했다.

카친스키 대통령은 시신은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각)를 조금 넘겨 바르샤바 공항에 도착했다.

도날드 투스크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인 코모슬라브 코모로브스키 하원의장와 유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애도 행사가 끝난 뒤 시신은 시내 간선도로를 따라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대통령궁 주변에는 사고가 난 전날 저녁부터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폴란드 국기를 상징하는 빨간, 흰 장미를 헌화하거나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을 추도하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바르샤바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유스티나 나이바르 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로오 2세 교황이 선종하신지 5년 만에 대통령까지 사고로 사망한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다"면서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런 끔찍한 비극 앞에서 모두 슬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바르 씨는 "70년 전 폴란드의 엘리트 2만2천명이 학살당한 곳에서 다시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것은 매우 상징적 사건"이라면서 "많은 사람이 인터넷에 추모의 글을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시신이 담긴 관은 12일부터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장례일정은 정부, 유가족들의 협의를 거쳐 12일 오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바르샤바나 카친스키의 고향인 그단스크에서 장례식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바르샤바의 한 교민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많은 국민이 성당을 찾아 희생자를 위한 특별미사를 올렸고 주말 대목인데도 백화점, 쇼핑몰, 슈퍼마켓 등 시내의 대부분 상점이 자발적으로 오늘 하루 휴업했다"면서 "관공서에서 일반 주택에까지 조기가 게양됐고 안테나에 검은 리본을 매단 차들도 많다"고 시내 분위기를 전했다.

많은 직원이 나와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주폴란드 한국 대사관을 비롯한 각국 대사관에도 일제히 조기가 게양됐다.

이 교민은 "TV 방송도 대통령의 시신 운구 행렬을 생중계하는 등 온종일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특별 방송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주변의 폴란드인들이 큰 슬픔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코모로브스키 하원의장과 투스크 총리는 이날 정오 전국에서 2분간 실시된 묵념의식 동안 국회의사당 앞에 촛불을 내려놓으며 희생자들에 대한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

묵념의 시간에는 시내 교통도 모두 일시에 중단되는 등 바르샤바는 말 그대로 '침묵의 도시'가 됐다.

정근수 기아차 폴란드 법인장은 "폴란드에 주재하는 4년 동안 시내 분위기와 사람들의 표정이 이번처럼 침통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카친스키 대통령에 대해 좋지 못한 의견을 가졌던 사람들까지도 회한에 휩싸여 있는 것같다"고 밝혔다.

친미 보수주의 색채가 강한 카친스키 대통령이 때로는 돌발적인 행동으로, 또 때로는 지나친 국정 발목잡기로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으나 폴란드인 2만2천명이 목숨을 잃은 '카틴 숲 학살사건'에 대해서만큼은 유난히 강한 집착을 보이는 등 투철한 민족주의자였다는 점에서 많은 폴란드 사람들은 특별한 아쉬움을 갖고 있는 듯했다.

자유노조에서 함께 투쟁했지만 나중에 카친스키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던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우리는 폴란드 민주화를 위해 함께 일했다"면서 "나중에 둘 간의 의견차이로 멀어졌지만 이제 그것은 지나간 역사의 한 장이 됐다"고 말했다.

(베를린연합뉴스) 김경석 특파원 k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