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각의 소집..정국 후유증 전망
사고원인따라 폴-러 관계에도 파장 가능성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10일 러시아 방문 중 비행기 사고로 돌연 사망하면서 폴란드 전체가 큰 충격에 빠져들고 있다.

러시아 관리들은 카친스키 대통령 부부 등 모두 132명이 탑승한 러시아제 Tu(투폴레프)-154 비행기가 이날 오전 10시 56분께(현지시각) 모스크바에서 서쪽으로 350km 떨어진 스몰렌스크 공항 부근에 추락,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이에 따라 이날 오후 긴급 각의를 소집해 향후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파벨 그라스 정부 대변인이 TVN24 방송을 통해 발표했다.

폴란드는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구성하고 정책을 수행하는 의회 내각제이지만 대통령도 대외적 국가원수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 폴란드 정국에 미치는 후유증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더구나 바르샤바 시장을 거쳐 2005년 대선에서 승리했던 카친스키 대통령은 1980년대 폴란드의 민주화를 이끈 자유노조 출신으로 폴란드 국민에게 큰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향후 폴란드 정국에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불 가능성도 있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의 권한은 보르니슬라브 코모로브스키 하원의장이 대행하게 된다.

하원의장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10일 오전 (폴란드 북부) 그단스크에 머물던 코모로브스키 의장이 바르샤바로 오고 있다"고 발표했다.

귀족 가문 출신으로 공산체제 시절 반체제 인사였던 코모로브스키 의장은 카친스키 대통령과 비슷한 보수 우파적 정치 노선을 갖고 있다.

최근 해빙무드를 보였던 폴란드-러시아 관계는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중대한 수준의 파장이 일 가능성도 있다.

카친스키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한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초대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소위 '카틴숲 학살사건' 추모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카틴숲 학살사건이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0년 당시 소련 비밀경찰(NKVD)이 서부 스몰렌스크 인근의 산림 지역인 카틴숲에서 폴란드인 2만2천여명을 살해, 암매장한 사건이다.

소련은 이 학살이 나치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으나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면서 지금까지 폴란드와 러시아 간 분쟁의 불씨로 남아있다.

푸틴 총리는 70주년 추모식에 도널드 투스크 폴란드 총리를 처음으로 초대해 양국관 화해 분위기를 이끌었으나 그동안 러시아 정부를 강력히 비판해온 반공주의자 카친스키 대통령은 초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카친스키 대통령은 "폴란드의 최고 대표자는 대통령"이기 때문에 초대가 없더라도 카틴을 방문할 것이라면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결국 이날 카틴에서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별도로 추모식을 개최할 예정이었다.

사고 조사 결과 러시아의 안전 조치가 소홀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그러잖아도 과거사 문제로 러시아에 대해 반감이 있는 폴란드 국민의 대(對) 러시아 정서가 급격히 악화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자유노조 지도자였던 레흐 바웬사 전 폴란드 대통령은 AFP 통신에 "상상할 수도 없는 참사이자 비극"이라고 울먹이면서 "소련은 70년 전 카틴에서 폴란드 사람들을 대량학살했고 오늘은 폴란드 엘리트들이 그곳에서 학살당한 사람들을 애도하려 가려다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베를린연합뉴스) 김경석 특파원 k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