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지하철 테러 발생 이틀 만에
테러범 사형제 논의 구체화..안보 라인 문책 주목


모스크바 지하철 테러가 발생한 지 이틀 만인 31일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공화국 키즐라야시에서 연쇄 폭탄 테러로 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이타르 타스 통신 등이 보도했다.

러시아 비상대책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현지시각) 키즐라야시내 다게스탄 공화국 내무부 건물 인근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보이는 두 건의 폭발로 적어도 12명이 숨지고 23명이 부상했다.

사망자 중에는 키즐라야시 경찰서장 등 경찰관 9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사건 현장은 내무부, 연방보안국(FSB) 지부, 학교 등과 약 3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지 정부 소식통은 "경찰 순찰차가 지나갈 때 러시아제 지프 차량에서 갑자기 폭탄이 터졌고 20여 분이 지나 사고 수습을 위해 경찰과 비상대책부 직원들이 현장에 도착한 직후 다시 2차 폭탄이 터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두 번째 폭발은 경찰 복장을 한 남자의 몸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말했다.

1994년과 1999년 두 차례 분리주의자들과 전쟁을 치른 체첸공화국과 인접한 다게스탄는 반군 잔당들이 도망한 곳으로, 최근 몇 년간 테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1월 수도 마하치칼라 외곽에 있는 교통경찰서 정문 부근에서 러시아제 승용차가 경찰서로 진입하려다 저지당하자 곧바로 차량에서 폭탄이 터져 22명의 경찰관이 숨지거나 다쳤다.

이번 사건은 지난 29일 모스크바 지하철 연쇄 폭탄 테러가 있은 지 이틀 만에 터진 것으로 러시아에 테러 공포가 계속되고 있다.

지하철 연쇄 폭탄 테러로 현재까지 39명이 숨졌고 70여 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이번 모스크바 참사를 계기로 테러 정책 전반을 재검토하고 테러범들에 대한 처벌 강화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전날 "테러범들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들을 하수도에서 밝은 빛 아래로 끌어내는 일은 안보 기관의 명예가 달린 문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폐쇄회로(CC)TV 확대, 폭발물 탐지 장비와 시스템 개선, 대(對)국민 테러 경보 체제 개선 등 다양한 보안 대책을 공언했다.

그런가 하면 연방의회(상원)는 다수 인명을 앗아간 테러범들에 대해서는 사형제를 유지한다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는 1996년 유럽인권조약 가입 이후 사실상 사형 집행을 중단한 상태며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는 사형제 중단을 계속 유지하기로 한 바 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이번 테러가 현 정부의 안보 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일부 언론의 비판 이후 나온 것이다.

그동안 체첸과 다게스탄, 잉구세티아 등 북카프카즈 지역에서 한정됐던 자살 폭탄 테러가 수도 모스크바에까지 확산하자 안보 불안을 잠재 우려던 러시아 당국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는 지적이다.

연방보안국(FSB)은 이번 테러 용의자로 지목한 북카프카즈 출신의 여성 2명이 이슬람 반군 세력 특히 체첸의 여성 테러단체 '검은 미망인(Black Widows)' 소속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이들의 배후를 캐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테러 공격이 최근 정부군의 진압작전으로 사이드 부르야츠키와 안조르 아스테미로프 등 반군 지도자를 포함해 20여 명이 사망한 데 대한 보복으로 해석하고 있다.

당국은 현재 두 반군 지도자의 가족과 친척들에 대한 알리바이를 캐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여성 용의자는 테러 당일 오전 한 남성과 함께 모스크바로 버스를 이용해 들어왔으며 3개의 가방을 휴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이슬람 문화센터는 폭탄 테러 배후를 신고하면 3만 달러의 포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당국이 북카프카즈 출신자들을 테러 용의자로 지목한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체첸공화국 국회의장은 아무런 근거 없이 왜 체첸 출신을 전부 범죄인으로 몰고 있느냐며 항의했다.

30일 모스크바에서는 카프카즈 출신 여성들이 폭행을 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한편, 이번 폭탄 테러와 관련해 안보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 여론이 나오는 등 정치적으로도 큰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알렉산드르 구로프 의원은 "FSB가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서 FSB 국장의 사임을 촉구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과거 테러 사건에 비춰 이번 일로 국가 안보를 책임진 FSB나 내무부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관측통들의 분석이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