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지진보다 위력 세지만 피해는 적어
잦은 지진에 만반 준비ㆍ건물 내진 설계도


27일 남미 칠레에 규모 8.8의 강진 사태가 발생하며 아이티를 뛰어넘을 수도 있는 최악의 참사가 우려됐지만 피해 규모가 예상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칠레를 강타한 지진은 지난달 12일 아이티에서 발생한 규모 7.0 지진보다 800∼1천배에 달하는 위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지금까지 파악된 인명피해는 아이티 때와 달리 수백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아이티 지진 때는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사망자수만 최대 30만명에 달해 2004년 22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동남아 쓰나미 사태를 뛰어넘는 최악의 재난으로 기록됐다.

전문가들은 칠레가 비교적 적은 피해를 본 이유로 무엇보다 잦은 지진에 길들여진 강한 내성을 꼽았다.

칠레에는 지진 자체를 느낄 수 없는 것을 포함해 연간 200만번의 지진이 찾아오는 데다 규모 8 이상의 강진도 연 1회 이상 발생하는 탓에 국가 전체가 지진에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지진에서 사망자수가 크게 늘어나지 않은 이유로 '준비된 상태(preparedness)'를 들며 칠레 정부와 국민들이 평소 긴급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칠레 재난당국의 경우 비상 사태시 소방관이나 의료팀 등의 요구에 대응하는 조직체계가 전국적, 지역적, 지방자치단체별로 꽉 짜여 있어 재난 대비에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지진에 강한 인프라도 피해를 줄이는 데 큰 몫을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서 시신 발굴작업이 진행되면 사망자수는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많은 건물들이 애당초 내진 설계로 지어진 덕분에 지진 충격에 모래성처럼 무너져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이티의 경우 지진의 진앙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불과 15㎞밖에 떨어지지 않은 점도 있지만 내진 설계가 전무한 건물들이 지진에 무력화되면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참사 초기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부분이다.

여기에 아이티와는 다른 칠레의 지리적 및 지질 환경도 피해를 줄인 배경이다.

아르헨티나 국립 지질예방소의 알레한드로 히우리아노 소장은 현지 언론매체인 '클라린 푼토 콤' 인터뷰에서 칠레와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은 서로 상관관계가 없다며 칠레는 환태평양과 남미판 아래에 있는 나스카판의 작용에 따르지만 아이티는 카리브판과 북미판 사이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아이티와 칠레 지진에서 희생자의 차이에 대해 칠레는 단단한 지질을 가진 데 반해 아이티는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칠레의 건물들은 눈에 띌 정도로 재난에 잘 대비돼 있지만 아이티는 한참 떨어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차이가 가공할 만한 지진 앞에 높인 두 나라의 운명을 갈랐다는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양정우 기자 edd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