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닷컴] 터키 정부가 쿠데타 모의혐의로 체포된 전현직 군간부들을 24일 법정에 세웠다.정치적 이슬람주의를 따르는 정부와 정치와 종교를 엄격히 분리한 세속주의를 지키려는 군부 사이의 갈등이 또다시 고조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법정에 선 군간부들은 ‘에르게네콘(Ergenekon)’이라는 극우파 네트워크를 조직해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이끄는 이슬람주의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계획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터키 경찰은 지난 22일 ‘슬레지해머(Sledgehammer·대형망치) 작전’이라 불리는 쿠데타 모의 혐의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8개 도시에서 퇴역 장성 17명과 현역 장성 4명을 포함한 총 49명을 전격 체포했고 현재 구금중이다.이들 중엔 이브라힘 피르티나 전 공군참모총장,오즈덴 오르넥 전 해군참모총장,제1육군대장 세틴 도안 장군 등 전직 터키군 핵심 수뇌부들이 포함됐다.

이에 이이케르 바스북 참모총장은 23일 긴급 회의를 갖고 사태 파악에 나섰다.그는 쿠데타 음모설에 대해 “군의 명예를 실추시키려는 ’심리전‘으로 국가기구들 간의 대립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지난 1월 현지 일간지는 2003년 3월 군 핵심 인사들이 모여 쿠데타를 계획한 슬레지해머 작전을 보도했고 경찰은 감청 등을 통해 증거를 수집해왔다.바스북 참모총장은 “당시 모임이 전시 긴급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지 쿠데타 모의는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터키의 야당도 이번 조치에 강력히 항의하고 나섰다.주요 야당지도자인 데니크 바이칼은 “왜 이번 체포가 7년 전에 쿠데타를 모의했다며 현역에서 물러난 장성들에게 집중됐는지 묻고 싶다”며 의혹을 제기했다.민족주의 정당 지도자인 데블레트 바첼리는 “정부가 증오와 복수심으로 행동하고 있다”며 조기총선을 촉구했다.싱크탱크인 국제위기그룹의 터키 전문가인 휴 포프도 “이번 사건은 군에 대한 마녀사냥”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미국과 유럽연합(EU)도 적법한 사법절차를 통해 의혹이 밝혀지는지 주시하겠다며 터키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이번 검거로 2002년 출범한 친 이슬람 정부와 세속주의 세력 간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세속주의 세력의 핵심에 터키 군부와 검찰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오토만제국 시절부터 ‘파셔(pashas)’라는 존칭으로 불린 터키의 군사령관에 대한 국민의 신망은 여전히 두텁다.터키 군부는 1960년 이후 네 차례에 걸쳐 쿠데타를 일으킨 뒤 권력을 민정에 이양했으며 1997년에는 헌법재판소에 압력을 행사해 터키의 첫 이슬람 정부를 와해시킨 바 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