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인파 몰리고 폐건물 철거 한창
식량·물 부족과 전염병 확산 위험은 해결과제

사상 최악의 강진이 강타한 아이티는 참사 발생 보름째를 맞은 27일에도 여진의 공포가 여전했지만, 국제사회의 구호노력 덕분에 주민들이 점차 생기를 되찾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밀려든 구호 손길에 힘입어 주민들이 폐허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쓰레기와 건물 잔해를 치우는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고 재래시장에는 인파들이 몰려들었다.

정상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늘면서 출퇴근 시간대의 주요 교차로가 교통혼잡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식량과 물이 여전히 부족하고 위생상태가 불결한 탓에 국제사회의 구호노력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지진 충격에서 벗어나려는 아이티인들의 몸부림은 무위로 끝날 것으로 우려된다.

◇ 재래시장 아침부터 `북적' = 지진참사 속에서도 재활하려는 아이티인들의 의지는 재래시장에서 가장 쉽게 감지됐다.

기자가 27일 아침 찾아간 도심 북쪽의 시티솔레이 지역의 한 시장에서는 주민들이 돈을 꺼내 과일과 채소 등을 거래하는 장면이 쉽게 목격됐다.

약 1km까지 길게 늘어선 이 시장에서는 양배추를 다듬어 파는 노점상과 바나나를 가득 실은 트럭 등으로 붐볐다.

포르토프랭스에 파견된 한국 119구조대도 "시간이 흐를수록 현지 시장이 더 활성화되고 있고 이곳을 찾는 주민 수도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도심의 대통령궁 주변 시장에서도 모자와 신발, 허리띠, 옷 등을 파는 가게가 10여개 생겨났다.

지진 흔적을 지우고 재건하려는 노력도 활발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파손된 건물을 철거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진 충격으로 망연자실했던 며칠 전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기자가 현지 취재를 끝내고 출국하려고 공항으로 이동하는 거리에서는 너저분하게 널린 쓰레기가 한곳으로 모아져 대형 쓰레기차에 실려나갔고, 녹색 반소매 티셔츠를 맞춰 입은 여성들이 빗자루를 들고 10여 명씩 무리를 지어 거리 곳곳을 청소하기도 했다.

주민들의 눈물겨운 재건 노력에도 정상적인 삶을 되찾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도로 곳곳이 파손돼 차량 흐름이 막히고, 하천에도 쓰레기가 넘쳐나지만 여기까지는 아직 재건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식량ㆍ물 부족 여전히 심각 = 포르토프랭스 도심에는 유엔군과 현지 경찰이 배치돼 치안은 대체로 안정됐지만, 여전히 식량과 물이 부족해 상당수 주민이 생계난에 처해 있다.

아이티에 파견된 하경화 기아대책 국제사업팀장은 "여기처럼 척박한 땅은 처음 본다.

주민들은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해 생존문제에 처해 있다.

세계 각국의 지원은 계속 되어야 하고 치안과 안보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포르토프랭스에서 근무 중인 미군 관계자도 "아이티 정부 관계자나 공무원은 세계 각국에서 온 보급품을 자기 주머니에 챙기는 때도 있다.

배급 과정에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호의 손길이 골고루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기자가 도심을 둘러봤을 때 금방 알 수 있었다.

음식과 돈을 구걸하는 행인을 자주 만날 수 있었고 한국 119구조대가 지난 26일 방역활동 중 잠시라도 방역차를 멈추면 바구니와 모자를 들이대며 음식이나 돈을 달라는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도시 건물 벽에는 `We need food, water'(우리는 음식과 물이 필요하다)라는 글자가 쉽게 눈에 띄었다.

우범지역으로 꼽히는 시티솔레이 지역에서 방역하던 한국 구조대는 일부 주민이 "음식을 달라. 방역은 중요치 않다"며 위협해 방역을 잠시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대사관과 아이티 경찰서 앞에는 보급품을 받으려는 욕심에 매일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이 줄을 섰다.

300여m 가량 늘어선 줄에는 임산부, 어린이, 노인도 끼어 있었고 새치기를 당하지 않으려는 듯 일부 구간에서는 앞사람 등과 뒷사람 배가 밀착돼 있었다.

UN군이나 미군이 한때 보급품을 배급했던 곳에는 현지 주민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고 쓰레기 더미에서 쓸 만한 것을 찾는 주민도 꽤 많았다.

◇ 위생상태 나빠 전염병 창궐 우려= 재활노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음에도 식량난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없어 주민들의 생존투쟁은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구호품을 더 많이 챙기려고 주민들이 앞다퉈 몰려들면서 큰 혼란이 빚어지자 식량을 배분하던 유엔군이 질서를 잡으려고 최루가스를 발사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빈민촌에서는 물을 구하지 못한 어린이가 길바닥에 고인 물을 바가지에 담아 가는 장면도 목격됐다.

시내 국제공항 인근의 자유무역공단인 소나피 공단 주변에는 일자리를 찾으려고 기웃거리는 청년들이 수시로 눈에 띄었다.

빈민이 모여 사는 난민촌 등에는 아직 복구 작업이 시작되지도 않아 쓰레기가 넘쳤다.

이 때문에 파리와 모기 등 해충이 크게 늘면서 전염병이 확산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낮 기온도 30도를 훌쩍 넘는데다 냉장시설은 기대하기 어려워 식중독 걱정도 크다.

(포르토프랭스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gogo21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