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 삼성전자 · 현대자동차 등 인도 내수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제조업체들과 달리 한국 금융회사들의 인도 진출은 아직 활발하지 않다. 신한은행과 미래에셋자산운용만이 과감하게 먼저 뛰어들었을 뿐이다. 한 · 인도 CEPA(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 등의 영향으로 진출을 타진하는 금융회사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엄격한 규제로 단기간에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금융시장 진출은 걸음마 단계

인도의 맨해튼으로 불리는 뭄바이 나리만포인트에 있는 신한은행 뭄바이지점에 들어서면 우선 낯설다는 생각이 든다. 장총을 메고 있는 수위 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그 깔끔한(?) 신한은행 지점의 내부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많이 못 쓰는 이유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임대료 때문이다. HSBC 씨티 도이치뱅크 BNP파리바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은행들이 자리잡고 있으니 임대료가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신한은행은 인도에 가장 먼저 진출한 한국 금융회사다. 신한은행과 합병한 조흥은행이 1996년 5월에 문을 연 뭄바이지점에 이어 2006년12월 델리에도 지점을 냈다. 뭄바이지점에는 한국직원 3명을 포함해 총 28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매년 인도 경제성장률(7~8%)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주된 영업 대상은 현대자동차 등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다. 인도 기업이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에도 나서고 있지만 쉽지 않다. 신한은행 뭄바이지점 도건우 부지점장은 "한국 금융회사가 인도 기업의 재무상태 등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인지도 등도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외에 직접 영업을 하고 있는 곳으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유일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06년 11월에 지점이 아닌 법인을 설립했다. 증권거래소가 있는 뭄바이 반드라(bandra) 콤플렉스 산타크루즈 지역에 있는 법인 외에도 인도 전역에 13개 지점을 두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2008년 4월 한국 운용사 최초로 인도 현지에 '미래에셋 인디아 오퍼튜니티펀드'를 선보였다. 상품에 투자하는 '글로벌 커머디티주식형펀드와 순수 중국투자 펀드인 '차이나 어드밴티지펀드' 등도 판매하고 있다. 인도 현지인을 상대로 한 영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현지 진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 우리 · 하나 · 외환 · 수출입은행과 삼성생명 및 삼성화재가 델리 등에 사무소를 두고 지점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우리은행은 사무소를 델리에서 현대자동차 공장이 있는 첸나이로 옮겨 올 상반기 안에 지점을 설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나은행은 인도인 사무소장을 기용해 지점 설립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한 · 인도 CEPA의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는 올해부터 향후 4년간 한국 은행지점 10개를 인도에 설치할 수 있도록 약속했다.

◆각종 규제로 단기 성과는 기대 어려워

한국 금융회사들의 진출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발목을 잡는 규제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은행의 경우 '의무대출 비율'과 '동일인 대출 한도'가 영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의무대출 비율은 전체 대출금의 32%를 수출기업(12%),영세기업(10%),주택(10%)에 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의무 비율이 워낙 높다보니 수익성 높은 대출에 집중하기 힘들다.

동일인 대출한도는 한 기업(개인)에 대출할 수 있는 한도를 영업 기금의 15%로 제한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델리와 뭄바이 지점을 합한 자본금이 5800만달러이기 때문에 한 기업에 최대 대출할 수 있는 규모는 870만달러에 불과하다.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려는 기업들을 상대로 대출 영업을 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신한은행 뭄바이지점 강정모 과장은 "글로벌 은행들에 비해 아무래도 자금력이 뒤지다보니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의 경우 아이로니컬하게도 한국에서 자금을 모은 인도 펀드를 직접 운용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운용자문을 해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유는 세금 문제 때문이다. 관련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인도법인이 한국에서 만들어진 인도 펀드를 운용할 경우 '인도에서 매출이 발생한 것'으로 간주돼 인도 세무당국이 세금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인도 증시에 투자할 수 있는 외국인 투자자로 등록하는 것도 1년가량 걸리는 등 절차가 무척 까다롭다. 이 때문에 등록을 포기하고 파생상품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인도 증시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도 많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인도법인 유지상 팀장은 "인도법인 설립 인가를 받는 데 서둘러서 6개월 정도 걸렸는데 여기서는 최단 기간 기록"이라면서 "외국인은 1,2년씩 걸리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뭄바이=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