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회의에 이목 집중.."파멸막을 마지막 기회"

2013년 이후 전 세계 온실가스 감축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지난 2년간 협상의 종착점으로 기대됐던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 당사국 총회가 큰 성과 없이 종료하면서 이제 세계의 이목은 내년 말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제16차 총회로 쏠리고 있다.

지난 7일부터 19일까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열린 15차 회의에는 193개 당사국 중 무려 120개국 정상이 참석했고, 환경운동가 수만명이 몰려들어 협상 타결을 촉구하는 행진을 벌이는 등 시종 뜨거운 열기 속에 진행됐다.

하지만 선진국과 개도국의 갈등, 미국과 중국의 이해 대립 등으로 결국 미국,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공 등 5개국이 마련한 "코펜하겐 협정(Copenhagen Accord)에 유의(take note)한다"는 식의 어정쩡한 합의로 막을 내렸다.

코펜하겐 협정은 법적 구속력이나 감축 목표의 구체성 등에서 2012년말 효력이 끝나는 교토 의정서를 대체하기에는 크게 미흡할뿐더러 모든 당사국의 지지가 필요한 총회의 승인을 얻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협정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언문, 또는 명실상부한 국제 협약을 만들기 위한 로드맵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 그리고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세계 2위 배출국 미국의 정상이 직접 나서 협정을 마련하는 등 회의의 총체적 결렬을 막으려고 노력한 것은 희망의 불씨가 아직 살아 있음을 입증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교토 의정서가 채택될 당시에는 주최국 일본 외에는 어느 나라의 정상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더구나 미국은 아예 의정서를 거부해 세계 환경운동가들의 공적이 됐다.

당사국들이 온실가스 감축 수준과 관련,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수준과 비교해 '2℃ 이내'로 억제하자는 공유 비전에 합의를 이룬 점도 의미가 있다.

과학자들은 2℃를 지구 환경이 위험에 빠질 수 있는 '문턱'으로 간주하고 있다.

산업화 이후 지구의 평균 기온은 약 0.7℃ 상승했다.

군소도서개도국연합(AOSIS)이 주장한 1.5℃ 이내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과 시급성에는 공감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2015년 중간 평가 때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해 제한 목표치를 1.5℃로 낮추는 문제를 재검토하기로 했다.

개도국에 대한 재정 지원 문제와 관련해 총론에 합의한 것도 긍정적이다.

선진국은 개도국과 빈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10~2012년 300억달러를 긴급히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2020년까지 연간 1천억달러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이에 따라 온난화로 인한 인류 종말의 시계가 시시각각 다가오는 가운데 세계 각국은 내년에 다시 한번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살리기 위해 분주한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선진 38개국이 2008~2012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5.2% 감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교토 의정서가 1997년 회의에서 채택돼 2005년에야 발효됐으며 실제 배출 감축 돌입시기는 이보다 3년 후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세계는 이미 합의의 적기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 세계가 지구온난화를 방치할 경우 인류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이를 막기 위한 확고한 의지만 있다면 2010년말까지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강력한 합의를 도출해 2013년부터 실행에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는 평가이다.

문제는 자국의 득실만 따지는 국가 이기주의, 또는 정치인들의 국내 정치·경제적 이해 때문에 "지구라는 큰 배에 구멍이 난 상황에서 구멍을 누가 메울 것인지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2℃ 이내'로 억제하자는 공유 비전을 현실화시키려면 구체적이고, 법적 구속력이 있는 각국의 약속이 필요하다.

워싱턴 소재 '걱정하는 과학자들의 모임'(UCS)의 앨든 마이어는 코펜하겐 협정이 선진국의 구체적인 감축 목표 제시, 개도국의 배출전망치 대비 감축,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정점에 달하는 연도 제시 등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코펜하겐 협정은 또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개발도상국과 빈국에 대한 재정 지원 규모를 확정했지만, 앞으로 그 규모를 둘러싸고도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이견이 좁혀질지 미지수다.

개도국은 코펜하겐 협정이 제시한 연간 1천억달러가 아닌 2천억~3천억달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누가, 얼마를 내야 할지도 끝없는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코펜하겐 협정은 구체적 감축 계획을 내년 말까지 마련하기로 했으나 법적 구속력에 관한 내용을 막판에 삭제함으로써 내년에 추진될 협정이 얼마나 강제력이 있게 될지 의문이다.

최종적인 감축 목표가 정해진 다음에는 국가별로 배출량을 할당하는 절차가 이어지는데 이를 놓고서도 선진국과 개도국 간에 또 한차례 격론과 힘겨루기가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선진국들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수준 대비 16~23%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나, 개도국들은 선진국들이 1990년 기준으로 감축치를 약 40%로 늘려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개도국들의 자발적인 감축에 대해서도 논란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코펜하겐 협정은 개도국이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2년마다 유엔에 보고하도록 하고 선진국이 요구하는 투명성 부합을 위해 '국제적인 확인(international checks)' 절차를 밟되 중국의 주장을 반영해 주권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절충안을 선택했다.

하지만 국제적인 확인 절차에 대해 개도국이 쉽게 수용할지는 예단하기 어려운 문제여서 그 방식을 놓고도 한바탕 공방이 예상된다.

그동안 선진국은 제3의 국제기구를 만들어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입장을 펴왔으나 중국을 비롯한 개도국은 자율적으로 감축 목표를 준수하면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등 이견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처럼, 내년에도 첨예하게 맞서 있는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을 조율하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대표단은 특히 이번 회의에서 개도국이 국제법적으로 감축 의무를 지지 않으면서 실질적으로 감축을 행동에 옮기는 `나마 등록부(NAMA Registry:개도국 감축활동 등록부)' 도입을 제안해 코펜하겐 협정에 포함되는 성과를 거뒀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내년에 새 협정에 만들어질 때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선진국)으로 편입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서방선진국보다는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하더라도 국제적, 경제적 위상에 걸맞은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의무감축국이 아닌 나라는 한국과 멕시코뿐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5위이며 지난 10년간(1990~2000년)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은 세계 11위, 1990~2005년 배출 증가율은 99%로 OECD 국가 중 1위다.

(베를린연합뉴스) 김경석 특파원 ks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