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재정적자 세계 경제 수렁에 빠뜨릴까

전 세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빚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거품이 붕괴되고 소비 위축으로 경기가 후퇴하자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가 가능한 재정을 모두 동원해 방어해 냈지만, 이는 곧바로 각국의 재정적자 과다로 이어지면서 부메랑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악성 거품들이 모두 국가의 재정에 흡수됐다는 얘기다.

재정난을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이 급증하면서 국채 수익률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고 시장에 엄청난 물량으로 쏟아진 국채는 정부의 이자 부담을 늘리고 시중금리 또한 끌어올려 기업투자와 가계소비 위축을 초래, 세계경제를 다시금 수렁에 빠뜨릴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그 전조는 이미 시작됐다.

지난 11월 말 두바이 정부의 자회사 두바이 월드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데 이어 12월 들어서는 그리스와 유로존 4위 경제대국인 스페인이 국가 부채 문제로 국채에 대한 신용등급을 강등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스페인은 올해에만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10% 증가해 위험수준인 5% 대를 훨씬 초과했고 총 재정적자 규모는 GDP대비 67%로 급증했다.

그리스는 재정적자 규모가 GDP 대비 112.6%이다.

여기에 매년 GDP 대비 10% 이상의 재정적자가 누증돼 2011년에는 135.4%까지 도달할 것으로 보여 국가의 재정부도 상황이 올 것이란 전망까지 대두하고 있다.

게오르그 파판드레우 총리는 "정부 재정적자를 유로존 목표치인 GDP 대비 3% 이내로 줄이겠다"며 방안을 내놓았지만, 워낙 뿌리깊은 사회의 부패구조와 비효율로 인해 세수가 걷히지 않고 있어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들 두 국가의 신용등급 하락은 곧바로 유로존의 다른 국가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휘발성이 높다.

당장 국가부채 규모가 큰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 포르투갈도 위험권에 들어섰고, 여기에 발틱3국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는 물론 러시아와 과거 동유럽 국가들의 재정 적자 문제도 2010년 지구촌 경제의 화약고가 될 소지는 얼마든지 있다.

이들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의 속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12월 8일 무디스는 미국과 영국 등도 늘어나는 재정 적자 때문에 최고등급 유지가 위태로울 수 있으며 이들 국가의 재정위기가 앞으로 몇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지난 9월 끝난 2009회계연도의 미국 재정적자는 1조 4천억 달러였다.

이는 미국 GDP의 10%에 이르는 규모다.

게다가 정부 총부채는 12조 달러나 되고, GDP대비 부채비율은 97.5%에 달한다.

영국은 내년 재정적자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악 수준인 GDP의 1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은 부채 규모로만 보면 이들 국가 중 가장 심각한 형편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일본의 정부 부채는 864조5200억엔(9조6000억달러)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GDP 대비 181%에 달하는 규모로 10년 전 94%에서 두 배가량 높아진 수치다.

여기에다 세수 감소와 지출 증가로 2010년의 GDP 대비 부채는 20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국가부채에도 불구하고 신용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외환보유고 때문이다.

이는 거꾸로 보면 무역흑자가 줄어들거나 적자로 전환되면 대외지불능력에서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구조다.

최근 무디스 보고서는 "2007년 중반 금융위기가 불거진 이후 국가신용 위험도 평가 환경이 급변했다"며 "금융에서 실물로 번졌던 글로벌 위기의 마지막 무대가 선진국을 포함한 주요국 재정위기의 장기화로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지난달 3일 국제통화기금(IMF)이 집계한 주요 20개국(G20)의 재정적자 규모는 위기 이전인 2007년 G20 국내총생산(GDP) 대비 1%에서 올해 들어 7.9%로 나타났다.

2년 사이 무려 6.9% 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

금융위기를 예언한 바 있는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각국의 재정부실로 인해 더블딥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 바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나랏돈을 쏟아 부은 각국 정부가 세입 감소 등의 영향으로 적자폭이 커지면서 내년에는 올해와 같이 경기부양에 돈을 투입할 여력을 갖추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간신히 고비를 넘긴 듯한 경기를 다시 침체로 빠뜨리는 재료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각국 정부가 뻔히 재정적자의 심각성을 알고 있지만, 이를 낮추기 위한 방안을 섣불리 꺼낼 수 없다는 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13년까지 재정적자를 GDP의 3%대인 5천330억달러로 낮춘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시장은 반신반의하고 있다.

경기 재하강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과연 오바마 대통령이 재정지출을 줄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특히 내년 출구전략이 시행되면 금리가 오르고 각국 정부의 이자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선진국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더 많이 걷을 것이고, 이는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수출위주의 개발도상국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결국 생산이 줄고 원자재 수요도 감소하면서, 선진국, 개도국, 자원부국 할 것없이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게 2010년 더블딥 가능성을 경고하는 전문가들의 얘기다.

그러나 각국이 재정적자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고, 현재 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완만한 추세이긴 하지만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신흥개발국과 아시아국가의 경제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면서 더블딥의 위기로 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또한 현재 재정적자 문제가 심각한 유럽국가와 미국 및 일본은 기축 통화국이거나 준 기축통화 국가에 편입된 나라들이고, 일본은 외환보유 대국이어서 당장 신용파탄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도 낙관론의 한 근거다.

푸르덴셜 국제투자자문 존 프라빈 최고투자전략가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미국과 유럽에서의 더블딥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재정부양책이 아직 많이 남았고, 장단기금리가 매우 낮은 데다, 재고수준도 60년 만에 최저수준이라 내년에도 경기회복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캐럴라인 앳킨슨 IMF 대변인은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정책에 힘입어 경제 회복이 진행돼 왔기 때문에 회복의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아직 남아있다"면서 "시장의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서는 빚 문제에 대한 장기적 관점의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뉴욕연합뉴스) 김현재 특파원 kn020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