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국내 증시에서 원 · 달러 환율의 움직임이 다시 관심이다. 시장 일각의 관측처럼 약세를 보이던 미국의 달러 가치가 강세로 전환한다면 달러캐리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원 · 달러 환율은 크게 요동쳤다. 지난해 초 대부분의 금융사들은 모기지 사태로 당시 900원대 초반에서 움직이던 환율이 그 해 말에는 850원 밑으로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예상을 토대로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선물환을 통해 미리 원화로 바꾸고 각종 수입결제는 연말로 미룰 것을 권했다.

하지만 정작 환율은 1600원까지 급등했다. 증거금 부족으로 '마진 콜'을 당한 미국계 금융사들을 중심으로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키코사태'에서 보듯 기업들은 환위험 관리 실패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올해는 원 · 달러 환율이 정반대의 흐름을 보이며 기업을 다시 난감하게 만들었다. 일부에선 지난해의 일을 반성하듯 뒤늦게 환율이 2000원대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았지만 환율은 올 3월 초를 고비로 급락세로 돌아서 이에 대비하지 못한 기업들은 또 한 차례 곤욕을 겪었다. 위기 발생 다음 해에는 대규모 무역흑자가 난다는 점과 대규모 이탈에 따른 반작용으로 주식의 저가 매력과 환차익을 겨냥해 외국자금이 대거 유입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급락세를 보이던 환율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벌써부터 달러 가치가 강세 기조로 돌아서 국내 증시에 유입됐던 달러캐리자금이 본격 이탈되는 것 아니냐는 고질적인 '비관론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각이 다시 등장하고 있다. 현재 원 · 달러 환율은 적정 수준에 와 있는 상태다. 수출채산성으로 본 환율의 적정 수준은 달러당 1150~1170원으로 추정된다.

이론상 달러캐리자금은 투자대상국의 환율이 적정 수준에 도달하면 유입세가 둔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곧바로 유출되는 것은 아니다. 차입국(달러캐리자금의 경우 미국)에서 청산할 수 있는 확실한 요인,이를 테면 금리가 인상돼 차입 비용이 오르거나 한국보다 경제 여건이 더 좋아 차입국의 기대수익률이 높아져야 청산된다.

기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회의(FOMC) 결과로 미뤄보면 미국의 금리 인상은 빨라야 2010년 하반기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대부분의 예측 기관은 내년에도 한국이 미국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에 달러캐리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히려 내년에는 원 · 달러 환율이 지난해와 올해에 걸친 커다란 파동 뒤에 이어지는 '잔물결 효과(riffle effect)'로 변동성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잔물결 효과란 호수에 큰 돌을 던지면 한 차례 큰 파동과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호수 가장자리까지 작은 파동이 이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같은 처지에 처한 국가들의 신용등급이 잇달아 하향 조정되는 것도 이 용어로 비유된다.

내년에 미국의 대규모 재정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달러 약세가 더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때 그동안 진행된 달러 약세로 부담을 느끼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은 시장 개입에 나서거나 토빈세 도입 추진 등을 통해 자국 통화 방어에 나서고 있어 어느 요인이 더 부각되느냐에 따라 환율이 오르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내년에는 믿고 맡길 만한 통화가 없는 '중심통화의 카오스(혼돈)'시대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달러 위상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중심통화로 거론되고 있는 유로화, 위안화,국제통화기금의 특별인출권(SDR),제3 통화인 '테라(Terra)' 등이 달러화를 대체하려면 상당 기간이 걸려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잔물결 효과로 원 · 달러 환율의 위아래 변동폭이 커질 것으로 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 만큼 기업들이 효과적인 환위험 관리 방안을 마련해 놓지 못하면 지난해 예기치 못한 환율급등과 올해 예상과 반대였던 환율 급락으로 이중고를 당한 데 이어 내년에도 다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